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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79. 트러스트 - 에르난 디아스.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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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진실은 수십에서 수백 가지가 나온다. 사람은 하나고 사건도 하나지만 이야기는 말하거나 쓰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의 소설 하얼빈. 하얼빈의 주인공이자 모티브가 된 인물은 독립운동가 안중근이다. 그럼 하얼빈은 안중근의 이야기일까? 하얼빈이 안중근의 일대기를 따라 사실을 많이 첨가해 쓰이긴 했지만 하얼빈은 안중근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훈의 이야기다. 

 

 만약 내가 오늘 카페에 가서 우연히 아는 친구를 만났다고 치자. 그 친구와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내가 우연히 누군가 두고간 것 같은 물건을 줍는다. 물건을 줍는 바람에 나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다. 내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을 내가 우연히 만난 친구가 글로 썼다면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인가? 아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나더라도 그 친구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트러스트
첫 작품 『먼 곳에서』(2017)가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미국 문단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거장 에르난 디아스. 그가 두번째 장편소설 『트러스트』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연말 각종 언론 매체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 리스트에 거의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에서 올해의 책 top 10으로 선정된 것을 포함해 〈뉴요커〉 〈보스턴 글로브〉 〈가디언〉 〈보그〉, NPR 등 서른 개가 훌쩍 넘는 매체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올해의 책으로 뽑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커커스상을 수상하고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과 작가의 탁월함을 입증했다. 1920년대 월 스트리트를 주요 배경으로 한 『트러스트』는 금융계에서 전설적인 성공을 거두며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 부부에 대해 네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 경제, 금융, 돈, 권력, 계급 등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소설의 제목 ‘트러스트(Trust)’는 신뢰, 신탁, 위탁, 기업합동 등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로, 같은 인물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가 신뢰할 만한지, 어느 서술을 믿을 것인지 등의 질문을 담은 중의적 의미로 쓰였다. ‘트러스트’라는 제목이 신뢰와 믿음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기업합동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의미하듯, 이 소설 또한 여러 영역의 ‘트러스트’를 모두 탐구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텍스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어떤 내러티브를 믿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의 결혼생활을 통해 부부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며, 인간사 전체에서 신뢰와 배신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러는 한편으로 작가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함을 가졌지만 동시에 비실재적이고 허구적인 존재로서의 ‘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20세기 초 주식시장과 금융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며 월 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의 특성과 그 추상적인 구조를 파헤치고, 부와 권력이라는 신화의 허상을 우리 앞에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자본주의, 금융, 권력, 계급과 같은, 시대를 초월해 현재에도 여전히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저자
에르난 디아스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3.02.24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는 실제 경제사를 모티브로 억만장자인 앤드루 베벨과 그의 아내인 밀드레드 베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각각의 시각에서 쓰인 부부의 이야기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부딪치는 이야기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헤럴드 배너라는 소설속 소설가가 앤드루 베벨의 어두운 면모를 폭로하겠다는 목적으로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의 이야기를 가명의 인물을 내세워 쓴 소설이다. 1부에서 앤드루 베벨은 각종 부정한 일과 자본주의의 허점을 노려 경제를 어지럽히는 인물로 나온다. 그의 아내인 밀드레드 베벨은 처음엔 재능 있고 똑똑한 인물로 나오지만 앤드루와의 결혼생활과 과거 성장과정의 영향등의 이유로 점점 쇠약해지다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인물로 나온다. 소설 속의 소설에서 밀드레드가 정신병원에서 고통받다가 죽는와중에도 앤드루는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기에 바쁜 인물로 나오는데, 헤럴드 배너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긴 했지만 앤드루의 비열함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췄다.

 

 2부는 앤드루 베벨의 미완성 자서전이다. 자서전에서 앤드루 베벨은 자신의 뛰어난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총명함 그리고 아내인 밀드레드 베벨이 얼마나 가정적이고 순종적이며 총명한 여자인지를 말한다. 다만, 자서전에서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천성적으로 몸이 약해서 벌어진 일처럼 그려진다.

 

 3부는 앤드루 베벨의 미완성 자서전을 대필한 비서이자 현재는 작가인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이다. 3부에서 앤드루 베벨은 자신의 아내를 모욕적으로 묘사한 소설에 반해 진실을 이야기 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다 파르텐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불러주고 그녀가 적당히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아이다 파르텐자는 앤드루 베벨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회고하며 당시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다. 파르텐자는 자서전을 쓴 과정을 써 내려가면서 사실 이 자서전은 앤드루의 말처럼 밀드레드를 위함이 아닌 앤드루 자신을 위한 것이며 자신의 과업과 총명함을 자랑하기 위한 자서전일 뿐이라는 것을 꼬집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밀드레드 베벨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다.

 

4부는 아이다 파르텐자가 우연히 발견한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다. 1부가 2부를 부정하고 2부가 3부를 부정했다면, 4부는 1부와 2부, 3부의 이야기를 모두 부정한다. 이 일기에서 사실 앤드루 베벨은 총명하지 않은 사람이며 앤드루 베벨의 성공은 밀드레드 베벨의 총명함과 천재적인 감각 때문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두 부부가 멀어지게 된 것은 앤드루가 밀드레드의 말을 듣지 않고 시장을 교란했으며, 그녀의 병 역시 정신병이 아닌 암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책은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의 부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선행해 쓰인 이야기를 뒤쫒기 위해 쓰인 이야기가 또다시 다른 이야기에게 쫓아 서로 경쟁하며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제대로 된 진실일까. 제일 마지막에 쓰인 앤드루 베벨의 일기? 그들을 모두 쫒은 아이다 파르텐자? 솔직히 어떤 게 정말 진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의 주인은 누구인 것이냐에 대한 문제다.

 

책의 제목  Trust는 신뢰. 신임. 신탁. 이라는 뜻이다.

책은 진실 보다는 신뢰. 내가 굳게 믿고 의지하는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에 진실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저 내 믿음에 의해 접히고 정리된 이야기만 있는 것이다.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야기가 누구의 것이냐? 이야기란 무엇이냐? 에 대해 제일 직접적이고 소름 끼치게 묘사되는 장면은 자서전이 거의 다 쓰이고 나서 앤드루 베벨과 아이다 파르텐자가 술을 한 잔 나누며 자축하는 장면이다. 파르텐자는 앤드루에게 "밀드레드는 어떤 사람이였냐"고 묻는데 그 질문에 앤드루는 태연한 얼굴로 파르텐자가 꾸민 밀드레드의 모습과 일화를 말하며 자신의 부인은 어떠했다.라고 말한다. 그러곤 파르텐자가 쓴 내용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대서 부인과의 일화를 마무리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진실을 쫒기 위해 각각의 이야기를 경쟁시켰는데 이 부분 이후로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야기란 누구의 것인가. 내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내 것이여야 하는데 쓴 사람의 것인가? 내가 쓴 이야기는 당연히 내 것이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것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내가 읽은 책의 이야기 주인은 누구일까라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야기의 주인은 당연히 작가다. 허나 작가가 이야기를 썼더라도 그 이야기는 다양한 독자에게 보여지고 각각의 독자들 시선에서 그들만의 해석과 감상으로 다시 재구성된다. 물리적인 이야기는 존재하지만 그들이 읽고 감상한 이야기는 그들의 시선에서 재구성되어 그들의 머릿속에 남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여전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전에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이야기하며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개별적인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지금의 나는 그동안 내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영향이 모인 총합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지금 내 삶의 이야기는 어떨까? 멍청한 질문이지만 내 삶의 이야기는 내 것인가? 내 삶은 내 것일지언정 내 삶의 이야기.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타인을 통해서 향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 삶의 이야기.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각자의 주인이 있을 수 있고 다수가 조금씩 지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책은 네 개의 이야기가 서로 치열하게 부딪치며 정치, 경제, 페미니즘, 자본주의의 허상, 사실과 믿음, 신뢰, 사랑, 이야기에 대한 것 까지 폭넓게 담아냈다. 

 

매일 나는 무언가를 읽는다. 정말 짧은 것이라도 꼭 무언가 읽는다. 무언가 읽을 때 그 이야기는 쓴 사람의 것이 확실할까? 내 머리속으로 그 글자들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구부리고 다시 정리하면서 내 머릿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쓴 다음 기억하진 않을까.

 

에르난 디아스 - 트러스트 ★★★★

 

 

나누고 싶은 것들.

 

1. 이야기란 무엇일까.

2.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글을 썼을 때 생기는 딜레마.

3. 키치

4. 아이다 파르텐자와 아버지의 이야기

5. 헤럴드 배너

6. 조반니티

7. 돈의 가치

8. 2부 미완성의 자서전과 4부 타인에 의해 발굴된 일기장

9. 남의 이야기를 훔치는 것

10.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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