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으로부터 내려온 유전자를 통해 민족성과 한국의 문화가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 시를 모르더라도 윤동주의 시는 괜히 뭉클해지는 것이 있다. 그러나 마음은 뭉클해질지언정 시는 여전히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영화 "동주"를 보고도 몰랐고, 시인의 영화인 줄 알고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서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책을 읽고, 어릴 적 그토록 선생님들이 말했던 "짧은 시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을 몇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듯 말 듯 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우연하고도 하찮은 기회로 시인 네루다만을 위한 우편배달부가 된 마리오 히메네스의 이야기다. 마리오는 작은 행운으로 이슬라 네그라에서 네루다만을 위한 우편배달부가 된다. 범인이 대개 그렇듯 마리오는 유명한 시인인 네루다에게 헌사를 받아 으스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네루다의 책을 사기도 하고 그의 시를 읽어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모두 허사가 되어 포기할 때쯤 마리오는 네루다와 메타포와 시에 대한 대화를 통해 시에 관심을 갖게 된다.
네루다를 통해 메타포를 알게 된 이후부터 마리오는 항상 곁에 있던 바다, 바람,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등등..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존재함에서 의미함으로 인식해 간다. 그리고 조금씩 네루다를 통해 시에 대해 알아가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자주 가던 주점에서 본 베아트리스를 보고 한눈에 반해 이제는 직접 시를 외우고 소리내서 읽는 지경에 이른다. 베아트리스를 유혹하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외우던 마리오는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어 떠난 후에는 시를 읽고 외우는 것에서 시를 쓰는 것까지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고 다시 네그라로 돌아오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는 결혼을 하게 된다. 둘의 결혼 직후 네루다는 마리오와의 짧은 조우를 마치고 곧장 파리 대사로 프랑스로 떠나지만 둘은 먼 거리에서도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네루다는 프랑스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 마리오에게 네그라의 소리들을 녹음하여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네그라의 소리를 녹음하는 대목에서 시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조금 실감했다. 마리오는 종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와 같이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다. 심지어 녹음을 잘 못해 자신이 한 욕지거리도 녹음을 하는데, 욕지거리조차 마리오와 네루다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는 정겹고 인간미 넘치는 소리 같았다. 마지막으로 녹음 한 소리는 갓 태어난 마리오의 아들 울음소리였다.
네그라 자연의 소리에서 마리오의 목소리, 마리오의 아들 울음소리까지 소리 구성들은 네루다의 시가 책을 뛰쳐나와 현실 세계에 어떤 결실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시가 현실 세계에서 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새 생명이 태어나는 모습은 가히 시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적절하게 느껴졌다.
메타포를 알고, 시를 외우고 그저 여인을 꾀어내기 위해 시를 말하던 마리오는 이제 직접 시를 짓고 잡지사에 투고를 하기도 한다. 네루다가 돌아오면 자신의 시를 보여주겠노라 다짐하며 꾹꾹 시를 눌러쓰던 마리오는 갑작스러운 국가의 위기 상황 속에 내전을 겪는다. 내전 때문에 네루다는 프랑스에서 이슬라 네그라로 다시 돌아오지만 마리오의 시를 읽기도 전에 큰 병으로 시를 읽지도 못한 채 마리오와 얼마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죽게 된다.
이후 먼 시간이 흘러 마리오는 전쟁 전 잡지사에 투고했던 자신의 시가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시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는 친구와 칠레의 민주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꾼다' 라는 의미보다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개개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는 뜻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일상을 특별함으로 인식하는 것. 인지를 인식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시인 것 같다.
책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했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재치와 해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준다. 일상적으로 말하면 심각해질 수 있는 대화나 무거운 주제들도 농담을 통해 좀 더 부드럽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속된 말로 드립이 좋았다. 드립으로 유명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이미 고전소설이라 불리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요즘 나오는 작품들의 위트와 농담이 비견될 정도니 농담과 위트에는 최신 유행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들어주는 책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나누고 싶은 것들.
1. 메타포
2. 일상에서 나의 농담과 위트
3. 드립
4.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5. 네루다의 시
6.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에 대해
[1. 네루다와 마리오의 만남 2. 네루다를 위한 녹음 3. 마지막 마리오와 네루다의 만남]
7. 한국의 근현대(민주화시기) 시에 대해
8. 내가 하고도 뿌듯했던 나의 드립 혹은 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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