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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73. 체리토마토파이 - 베로니크 드 뷔르.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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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삶에 대한 진정한 예찬으로 안식을 느끼게 하는 소설『체리토마토파이』. 아흔 살, 외딴 시골 농가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잔. 아흔 번째 봄을 맞던 날, 잔은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별일 없는 나날 속에서도 그날그날의 기분을 기록하고 문득 떠오르는 추억을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늙은이의 특권이라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잔은 이 넘쳐나는 시간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채우며 살기를 원한다. 언제까지나 자기 집 정원에서 꽃이 피는 광경을 보고 싶고, 친구들과 백포도주 한잔을 즐기고 싶다. 유일한 이웃인 옆집 농가 부부의 좌충우돌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고, 벤치에 누운 채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내년에도 이 별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잔이 써내려간 일 년 동안의 일기는 노년의 소소한 행복,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슬픔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한편, 우리도 잔처럼 늙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저자
베로니크 드 뷔르
출판
청미
출판일
2019.03.20

 

 

 나는 할머니와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각자 먼 지방에서 일하셔 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두 분이 서울에서 일하실 땐 일이 바빠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집에 좀 여유가 생기고 청소년기가 지나서 나이가 들었을 땐 할머니에게 남은 친구가 없어 할머니에게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같이 시간을 보냈다. 내가 30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거의 30년을 할머니와 지낸셈이다.

 

 할머니는 생전 글자 한자 쓰거나 읽는 법 없이 생활하셨던 분이셨다. 그렇다고 글자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삶이 힘들어서 읽거나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할머니가 80이 넘었을 때 갑자기 내게 일기를 쓰고 싶다고 공책을 달라고 했다. 어디선가 받은 다이어리를 할머니께 드렸고, 할머니는 며칠간 그곳에 먼가 끄적였다. 할머니가 낮잠을 잔 틈에 슬쩍 다이어리를 보니 다이어리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과거 추억에 대한 것들이 적혀있었다.

 

 

 

 

 

  나이가 들면 갑자기 무언가 남기고 싶을까? 우리 할머니는 80이었지만 체리토마토파이의 잔은 아흔 살의 나이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체리토마토파이는 잔이 1년여 시간 동안 쓴 일기 형식의 소설이다. 아흔이든 여든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그 나이대의 삶은 비슷한 것 같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가끔 과거를 추억하는 삶. 여유 있고 너그러우며 욕심 없는 삶. 우리 할머니와 비슷하게 잔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간다. 주변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고, 가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흔이라는 나이에 믿기지 않게 자동차를 운전하고 시내에 나가기도 한다. 새로운 신문물에 짜증도 내고 가끔은 의사가 말리는 일탈(?)도 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주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다. 그 나이가 되면 어쩔 수 없다. 

 

 

 

남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잔은 자주 지인의 죽음을 경험한다. 노인에게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노인들은 주변 사람이 떠나가면 '다음은 내 차례인가'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슬픔을 넘어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잔은 두려움이 느껴질 때마다 하느님에게 편지를 쓰고 기도하고 과거를 추억하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또다시 하루가 오고 그다음 하루도 오면 어느새 긴장이 조금 풀어져 다시금 하루에 충실하는 삶을 산다. 여느 때와 똑같이 아침을 먹고 다가올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잊어진다는 것. 망각은 모든 이에게 축복이지만 노인에게 더 큰 축복이 된다.

 

 

 

 

 

 나의 할머니도 잔처럼 자주 죽음을 경험했다. 그 장소는 대부분 노인정이었다. 친구들과 대부분 연락이 끊겨 할머니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노인정뿐이었다. 노인정은 참 기묘한 곳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섬뜻하지만 죽음과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 아닌가. 죽음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오히려 피해야 할 곳 같지만 노인들은 노인정으로 가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지나간 삶과 남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이렇게 보면 노인정에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현명하고 욕심도 없고 너그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가끔 사람은 50을 반환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10살은 90살과 비슷하고 20살은 80살과 비슷하다. 노인이 현명하고 너그럽고 초연하다는 건 로망이다. 누군가가 심어준 이미지일 뿐이다. 노인들은 유치하고 욕심도 많다. "아니 그 나이 되어서 무슨 욕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본인이 어린것이다. 그러다가도 그들이 동시에 초연해지고 상념에 잠기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바로 노인정에 같이 출입했던 누군가의 부고 소식이 올 때다. 부고 소식이 오면 노인들은 함께 떠나간 이의 명복을 빌고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순간만큼은 잔도 노인정의 노인분들도 현인이 된다. 물론 하루 이틀 지나면 또다시 욕심꾸러기에 유치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지만. 

 

 

 

 

 

 잔은 혼자 살기 때문에 자녀들이 자주 전화를 걸고 불쑥 찾아온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 찾아가면 마냥 좋아할 것 같다는 우리 생각과 달리 잔은 막상 자녀가 찾아오면 기분은 좋지만 동시에 피로하고 귀찮아한다. 그렇다고 아무도 찾지 않으면 외롭고 슬퍼한다. 같이 있으면 피로하면서도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는 게 양가감정이긴 하지만 잔은 외로워서 쓸데없는 광고지라도 받고 싶어 한다. 나의 할머니도 그랬다. 남들은 받기 싫어하는 청구서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70 후반에서 갑작스레 휴대폰을 본인 명의로 바꾸고 요금도 직접 납부했다. 결국 나중에는 내가 처리하게 됐지만. 자기 이름 석자가 적힌 무언가라도 받고 싶은 게 노인의 외로움인가 보다. 잔을 보면서 할머니를 계속 생각했다. 항상 무언가 생각하고 무언가 느끼며 책을 읽었는데, 추억하며 책을 읽은 건 처음이다.

 

 

우리가 꿈꾸는 노인에 대한 판타지

베로니크  드 뷔르 ㅡ체리토마토파이★★ 

 

 

 

나누고 싶은 것들

1. 내가 생각하는 노년의 삶

2. 나의 노년은 어떨까?

3. 외로움과 귀찮음. 양가감정

4. 나의 죽음을 생각한 순간은?

5. 나의 죽음 이후

6. 어떻게 죽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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