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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71.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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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노벨문학상 수상 및 퓰리처상 4회 수상 등 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의 대표작.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 이민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해가는 아버지와 마약중독자 어머니, 알콜과 여자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형, 결핵을 앓는 시인 동생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진 오닐의 마지막 희곡이자 리얼리즘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오닐을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 작가 중 하나로 만든 비극적 가족사를 이해와 연민의 시선 속에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위대한 용서를 담아낸 걸작.
저자
유진 오닐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2.11.01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관계라면 끊어버려야 하지만 동시에 위로도 되는 관계라고 하면 어려워진다. 고통을 주면서도 위로를 주고 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게 있을까. 그런 관계는 사랑밖에 없다고 본다. 서로 미워하고 이해 못 한다고 하더라도 소강상태로 돌아가면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하는 게 사랑이자 가족이다. 서로 사랑 만주고 위안과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관계와 삶이라는 것은 그걸 허락하도록 두지만은 않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불쑥 들 때면 어김없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행복한 가정도 불행한 가정도 그 나름의 사연과 역사는 있다. 불행한 가정도 희망을 꿈꾸고 서로 껴안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희망조차 없는 가족은 서로가 불행이자 위안이다. 

 요즘은 많은 TV 프로그램에서는 "이혼해", "따로 살아", "아니 저러니까 이혼했지"와 같은 말들이 나오게끔 이혼과 가족의 붕괴를 조장한다. 많은 이혼류 프로그램이 도대체 왜 나오는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저들의 불행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라는 것인지. 저들의 불행을 보고 너네는 그래도 잘살고 행복한 거야.라는 천박한 만족을 누리라는지 모르겠다.
 

 
 
 유진 오닐이 쓴 밤으로의 긴 여로는 요즘 많이 나오는 TV 프로그램들처럼 가족의 붕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희곡이 요즘 나오는 TV 프로그램들과 같이 눈살만 찌푸리게 되지 않는 이유는 이 가족의 애증에 있다. 희망이나 위로와 같은 말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계속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이 질긴 애증이 우리의 가족을 되돌아보고 더 나아가 이해하고 사랑하게끔 한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1912년 8월 바닷가 근처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 거실을 배경으로 가족 간의 대화와 독백으로 풀어가는 희극이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이 가족에게는 나름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아버지,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 알코올 중독과 여자에 빠진 형, 결핵을 앓고 죽어가는 동생 이 가족들에게는 희망도 미래도 없다. 제목처럼 어둡게 느껴지는 밤으로 서서히 침식해가는 여정만 있을 뿐이다. 가족들은 서로의 어둠과 슬픔을 알고 있지만 쉽사리 그것을 건드리지도 바꿀 수 도 없다. 어쩌다 서로의 기억을 살짝이라도 더듬는 순간 바로 외면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 흘러나온다. 안개로 뒤 덮인 별장이라는 공간은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지 않게 꼭꼭 붕대로 묶은 것과 같은 티론 가족을 보여준다.

 이들은 각자의 상처를 지우고 잊어버리기 위해 돈, 마약, 술, 여자, 환각 속으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깨어나는 순간 비극적인 실상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꼬여버린 매듭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찾지 못할 정도로 길어져 버리면, 그저 덮어두고 견뎌낼 수밖에 없다. 이 가족의 비극의 꼬리는 이미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찾지 못할 정도로 길어져 버렸다. 그 시작을 조금이라도 더듬을라 치면 무섭게 고통이 올라온다. 그래서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하지만 이내 곧 사과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지독한 애증. 극 내내 비난과 사랑과 위안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이상하게 나의 사랑 나의 가족에 대해 뒤돌아 보게 된다. 이 뒤돌아봄이란 나의 불행과 상처, 난 그래도 괜찮네.라는 것들이 아니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을 이해하고 우리 상처의 꼬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위로하고 서로 더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아픔이 없는 삶이 어디 있고 결함이 없는 가족이나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삶에 아픔이 있고 가족 간의 균열은 있다. 그러하더라도 요즘처럼 관계를 절단해버리고 새 출발하면 괜찮다거나 저러니 이혼했지.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프로그램은 견디기 힘들다. 몇 달 전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PD로 보이는 사람이 작가들에게 다그치고 있었다. "야 그래서 되겠어? 더 센 사람 불러." 저 PD가 말하는 더 센 사람이라는 것은 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가족들을 찾으라는 뜻이었다. 베이컨은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치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요즘 나오는 프로그램들과 내가 보았던 PD가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들이 그럼에도 사랑하고 서로를 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의도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극적이고 사람들이 욕하고 그래. 난 그래도 괜찮네 라는 천박한 행복과 자기만족을 갖게 할 뿐이라고 본다.

 밤으로의 긴 여로의 티론 가족이나 요즘 나오는 프로그램들의 가족의 불행은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했고 그 소해도 달랐다. 이상하게도 티론의 가족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덮어두고 외면했던 가족과 관계의 상처, 비극이 조금씩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치유할 수 없는 법. 상처를 붕대로 묶어두기보다 붕대를 풀고 그것이 치유될때까지 지켜보아야 진정한 소해와 행복이 시작되지 않을까.

서서히 다가오는 밤밖에 없는 가족의 여행. 애증의 관계. 구원받지 못하는 삶에서 서로에게 상처와 사랑, 위로를 동시에 주는 이 가족이 주는 상념.
 
유진 오닐 - 밤으로의 긴 여로 ★★★☆
 
 
나누고 싶은 것들
1. 애증의 관계
2. 요즘 나오는 이혼 프로그램
3.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나의 가족사는?
4. 상처와 위로를 동시에 줄 수 있는가?
5. 가족
6. 사랑하는데 서로가 상처를 주는 관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7. 상처를 주고 후회했던 경험. 그리고 사과한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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