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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62.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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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영국 출신 여류작가이자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이 예언하는 섬뜩한 인류의 미래, 호러 기법으로 그린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상. 유전공학으로 인간까지도 복제되는 세기말,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근원과 가치에 대해 도전적이고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다섯쩨 아이' 벤은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통제 밖에 있는 이상한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어 그들의 삶을 계획했던 행로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벤은 그들의 '이상적인' 가정을 파괴해 간다. 비정상적인 한 아이가 그들의 가정과 그 가정의 기초가 되었던 모든 이상들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저자
도리스 레싱
출판
민음사
출판일
1999.06.25

 

 

 내가 믿고 있는 가치관이 사실은 허망한 것이고 그릇된 것을 알게 된다면 때에 맞춰 수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가치관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부여잡다 부정당하는 지경까지 오면 절망에 빠지거나 외면해 버린다. 장발장에서 자베르는 '절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가치관이 부정당하는 순간 자살을 했고, 다섯째 아이의 헤리엇은 애써 무시하고 관성처럼 집착하다 그 종말의 허무함을 보게 된다.

 


 도리스 레싱의 유명한 많은 책들이 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고, 도리스 레싱의 첫 책으로 다섯째 아이를 집어들었다. 다섯째 아이는 60년대 자유로운 가치관이 막 퍼져나가던 시기 전통적인 가정에 대한 가치관을 가진 데이비드와 헤리엇이 만나 가족을 이루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은 그 당시 관념과는 다르게 아주 많은 자녀를 낳아 남편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부인은 아이를 잘 키워 남편과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을 꿈꾼다. 부유한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의 도움으로 많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대저택을 구입한 둘은 아이를 하나 둘씩 낳기 시작한다. 둘은 네 번째 아이까지 너무 착하고 예쁜 아이들을 낳으며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처음 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가족들도 점점 그들의 집에서 같이 화목하게 지내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데이비드와 헤리엇은 둘이 그렇게 꿈에 그리던 가치관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장의 구분은 없다만 만약 이야기가 반전되는 지점을 구분한다면 헤리엇이 다섯번째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이다. 다섯번째 아이는 헤리엇의 뱃속에 있는 때부터 이상한 점을 보인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기괴한 느낌도 난다. 마치 불편한 목폴라티를 입은 것 마냥 목을 죄여드는 느낌이 든다. 다섯 번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헤리엇의 뱃속에서 유달리 거칠게 움직인다. 이 때문에 헤리엇은 자신이 사람을 임신한 게 아니라 괴물을 임신한 건 아닐까라는 착각까지 한다. 헤리엇의 고통스러운 임신기간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섯 번째 아이가 뱃속에 있어야 할 모든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태어남으로 끝이 난다. 조산아임에도 다섯 번째 아이는 전혀 왜소하지 않고 오히려 또래 아이들 보다 배는 더 크게 자란다. 뱃속에서부터 헤리엇을 고통스럽게 하던 다섯 번째 아이 벤은 자라면서도 다른 아이들과는 남다른 힘과 기괴함으로 가족들을 불안에 빠뜨린다. 형제들을 헤치고, 위험한 행동을 일삼으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행패를 부리며 가족들을 위협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나마 통제가 가능하지만 점점 커가면 커갈수록 힘이 세지면서 벤은 통제 불능의 상태까지 간다. 결국 벤으로 인해 가족은 점차 와해되기 시작하는데, 그걸 보고 있을 수만 없던 데이비드는 벤을 요양소로 보내버리고 벤이 없는 가족들은 잠시나마 예전의 화목함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무슨 바람에서인지 헤리엇은 모두의 반대에도 요양소에 있는 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어찌보면 헤리엇의 행동은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써 당연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가족은 와해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가족을 무시한 채 한 사람을 구한 헤리엇의 선택은 비판받아야 하는가? 헤리엇은 다른 가족들을 위해 벤이 죽게 내버려 두었어야 했는가? 여기서 윤리적인 딜레마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단순히 헤리엇이 그런 딜레마 끝에 벤을 구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책을 전부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다.


 책의 초반부분부터 벤이 태어나기까지 책은 지루하리만큼 가족이 구성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그 이유는 데이비드와 헤리엇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가정이라는 가치관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데이비드와 헤리엇은 각기 다른 이유로 전통적인 가정을 추구한다. 헤리엇은 집을 떠나 다른 친구들로 인해 가정생활이 행복한 인생을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데이비드는 이혼가정에서 자라면서 행복한 가정을 갖는 인생을 꿈꾸게 된 것이다. 둘의 가치관은 같지만 그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기괴한 벤을 보고 데이비드는 운이 나빴다고 결론짓고 그를 포기해버리려 하지만 헤리엇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헤리엇의 입장에서 행복한 인생. 행복한 가정 즉 그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대저택에서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사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에 그녀는 벤을 구했다. 끓어오르는 모성애 때문이 아닌 대저택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가정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벤이 돌아오고 헤리엇은 벤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으로 동질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실패한다. 다시 기본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벤을 통제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려는 헤리엇의 몸부림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그 애처로운 몸부림은 헤리엇을 비판하는 시각으로 바뀌고 벤의 기괴함은 나도 모르게 벤을 불편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까지 진화했다. 심지어 헤리엇과 벤을 마구 욕하기 위해 "벤 저녀석이 언제쯤 사고를 칠까"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끝까지 보았지만 벤은 부랑아 같은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도 이렇다 할 사고를 치거나 사람을 헤치지 않았다. 그저 무리와 어울리고 그들을 관찰하고 이끌 뿐이다. 내심 헤리엇과 마찬가지로 벤이 얼른 사고를 쳤으면 좋겠다는 마음,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언제 들릴까는 마음이었는데 책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까지 사고를 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소설의 종말은 데이비드와 헤리엇이 대저택을 팔고 벤이 강제로 출가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책의 마지막 순간만을 보면 왠지 데이비드와 헤리엇은 그들이 꿈꾸던 전통적인 가정이라는 가치관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대저택. 많은 아이. 그리고 아이들이 전부 자라 출가를 했고, 둘은 이혼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둘만의 작은 집으로까지 이사를 한다. 그런데 과연 이 둘이 정말 그들의 가치관을 지키고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가족은 와해되다시피 해체됐고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데이비드와 헤리엇은 서먹서먹해졌다. 겉으로 보면 행복한 가정 행복한 인생의 기본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만 알맹이는 전부 허상일 뿐 둘이 그린 가치관은 붕괴됐다. 책의 종반부 헤리엇이 가족의 식탁을 가지고 상상하는 가족 역사의 단면들은 그녀가 꿈꿔온 전통적 가치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장발장의 자베르 경감 이야기를 얼핏 했다.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결정은 몇 가지 없다. 제일 이상적인 것은 가치관이 흔들렸을 때 그걸 과감히 버리거나 바꾸는 것이지만 그런 사람은 몇 안된다. 대개는 자베르 경감처럼 붕괴되거나 헤리엇처럼 애써 무시하고 끝까지 붙잡아 그 종말을 보고 무의미함을 느낀다.

책이 끝나고 벤이 미래에 어떻게 살았을지를 상상했다. 헤리엇의 우려대로 부랑아가 되어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었을까? 마침내 누군가를 헤쳤을까? 아마 나의 바람대로 벤은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지도 그 누군가를 헤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벤은 끝까지 사람들을 계속 관찰만 하고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두머리로 무리들을 이끌고 다닐 것 같다. 책의 초반 무시무시한 힘과 생닭을 뜯어먹는 기괴함부터 음악과 춤에만 관심을 갖고 인간의 관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행동을 관찰만 하는 것까지. 벤은 이상하고 기괴한 인간이라기보단 그냥 비문명. 자연이라는 관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을 문명과 비문명의 대결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지도 않을까.

대저택에 많은 아이를 낳고 화목하게 지내며 여생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가치관은 큰 사건을 일으키거나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는 고작 남들과는 조금 다른 다섯 번째 아이로 인해 붕괴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 한지, 무언가를 통제하고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노력은 얼마나 유약한지, 문명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별 볼 일 없고 허세 충만한 것인지.
도리스 레싱 - 다섯 번째 아이 ★★★★☆


나누고 싶은 것들.
1. 다른 가족을 위해 벤을 구출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2. 벤의 존재와 벤의 미래
3. 헤리엇과 데이비드의 가치관
4. 벤과 에이미의 대조
5. 의사는 벤이 이상하다고 느낌에도 왜 외면했을까.
6. 나의 가치관이 흔들렸던 경험
7. 문명과 비문명
8.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벤에 대한 모성애나 부성애가 전혀 없었을까.


작성 - 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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