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소설이지만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든다. 그만큼 책에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겨있다. 때문에 작가의 생애를 찾아보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준다. 책의 분량이 고작 150페이지가량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5분 10분 더 투자해 작가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책은 프랑스인인 '내' 가 과거 식민지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식민지의 프랑스인이지만 편모 가정으로 어머니와 두 오빠와 살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 교육열이 강하고 극성인 어머니와 난폭한 큰 오빠, 약한 둘째 오빠와 살며 15살 때 벌써 정신적으로는 성숙된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우연히 젊은 부자 중국인 남자를 만나 그의 리무진을 얻어 타 집으로 귀가한다. 젊은 부자 중국인은 왠지 모를 매력이 느껴진다며 '나'에게 구애를 하고, 나는 경제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기에 그에게 연인이 아닌 정부로 관계 맺는다.
머지않아 가족들과 다른 이들도 나와 중국인의 관계를 알아챈다. 그러나 젊은 중국인 부자가 주는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가족들은 모른척 외면한다. 중국인과 나의 관계는 계속 지속되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중국인은 나와의 관계를 아버지에게 인정해 달라고 하지만 고리타분한 중국인의 아버지는 반대한다. 결국 중국인은 아버지를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다른 중국인 집안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고 나는 다시 프랑스로 떠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별한다. 그리고 소설의 시점은 다시 이야기의 초반인 현재의 나로 돌아온다. 몇 번의 결혼, 몇 번의 이혼 그리고 출산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 작가로 명성을 얻은 나에게 어린 시절 그때 중국인에게 전화가 오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뒤라스의 연인은 주어가 불분명하고 서사의 흐름이 시간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있다. 소설의 첫 시작이 노인의 회상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서사의 흐름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에 대한 어떤 이미지 혹은 감정, 생각 등을 과거로부터 발췌한다면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까지 차근차근 차례대로 생각하기보단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부터 떠올리고 그에 파생된 또 다른 기억들을 떠올리기게 보통이다. 때문에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주어가 없이 서술되는 것이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주인공이 노인의 시점이고 자전적인 요소가 다분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기법에 매우 충실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이 가족은 불행을 타고났다. 전쟁이라는 아픔.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 편부모 가정과 가난한 생활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이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지분을 조금씩 나눠가지고 있다. 이혼 경력이 있는 '나'의 어머니는 재혼을 하여 베트남으로 왔지만 재혼한 남편도 일찍이 죽고 만다. 남편이 없으니 이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젊은 나의 어머니밖에 없다.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에서도 아이 셋을 책임지기는 힘들 텐데 낯선 나라에서 책임지려니 그 고충은 굳이 책에 언급되지 않았어도 알만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성격은 당연히 억척스럽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많은 어머니가 그렇듯 남편의 부재가 있으면 기댈만한 곳은 (아들이 있다면) 첫째 아들이다. '나'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머니가 큰 아들을 편애하는 것은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이 가정을 빨리 정상화로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제일 나이가 많은 큰 아들뿐이라는 생각에 기인해서다. 그러기에 그가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다른 두 자녀를 괴롭히더라도 어머니는 묵인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큰 오빠 편애는 자연스레 이 가정을 두 패로 갈라놓는다. '나'와 작은 오빠가 한 패 어머니와 큰 오빠가 한 패다. 짐작건대 '나'는 작은 오빠와 한 패라는 점에서 성장과정에서 많은 것을 나누고 공감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나'는 큰 오빠를 죽이고 싶다는 치기 어린 생각도 하지만 그를 진짜로 죽이고 싶거나 증오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잘해주는 중국인이 큰 오빠로 인해 난감하고 괴로워 하는 순간에도 어머니와 큰 오빠의 편을 든다. 큰 오빠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가정을 일으켜세우는 역할을 하도록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성장한다. 술과 노름에 빠져 도둑질을 일삼고 재산의 집안을 거덜내는 그야말로 건달로 자란다. 그러니 가정은 점점 더 망가지고 피폐해진다. 어머니도 더 날카로워지고 신경질적이 되고 작은 오빠와 '나'도 점점 더 불행해진다.
집안이 이런 상황이니 주인공인 '나'는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때 마침 나타난 것이 부자 중국인인 것이다. 중국인 남자는 환경만 다르지 아버지에게 억압받는 점에서 '나'와 같은 입장이다. 짐작컨데 중국인이 '나'에게 끌린 것은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서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은 그런 동질감에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나'는 중국인과의 이별 전까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숱한 스킨쉽과 만남에서 부터 이별 전까지 함께하고 섹스를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사랑을 이별한 이후 배가 첫 작별의 고동을 울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별하고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나'는 비로서 중국인이 내게 느낀 것처럼 그와의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한 것이다. 처음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 숱한 섹스를 했지만 둘은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연인이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연인은 세 종류다. 처음 연인 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나'가 불행한 가족사와 슬픔 속에서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은슬픔을 자신의 연인이라 칭하는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깨달은 중국인과의 연인이 있고, 그 중간단계에 자리 잡은 연인은 작은 오빠다.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작은 오빠의 죽음이다. 소설의 '나'는 끊임없이 죽은 작은 오빠를 회상한다. '나'는 작은 오빠가 죽은 이후 불멸성을 생각하며 왜 그토록 본인이 그를 따라 죽고 싶을만큼 그를 사랑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속내라도 많이 이야기했으면 모르겠지만 '나'와 작은 오빠의 대화는 언제나 쓸데 없는 대화였다. 속내도 서로 교류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작은 오빠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했을까. 그 이유는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동질감. 무의식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오빠와 '나' 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방관과 큰 오빠의 횡포 아래에서 같은 처지, 같은 감정을 느꼈다. 굳이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그 불행을 견디기 위해 둘은 서로에게 무의식의 연대를 느꼈을 것이다.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지만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알고 사랑할 수 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대화보다 더 깊은 교류를 무의식적으로 나눌 수 있다. 작은 오빠와의 무의식의 교류이자 동질감이 그토록 '나'가 작은 오빠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책의 제목은 중국인과의 관계를 뜻하지만 중국인 - 작은 오빠 - '나'의 슬픔 - '나'로 이어지는 어떠한 무의식의 연결 고리가 있다. 이 연결고리가 바로 연인 관계이자 사랑이다. 중국인이 많은 해가 지나고 나서도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이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무의식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억압받고 불행할수록 자신과 비슷한 사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찾아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려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연인을 갈구하는 것은 이 거대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 껴안아주고 무의식의 연대 혹은 연결을 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나 서로 치유하고 위로하며 살아가기 위함은 아닐까.
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 거대한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책을 매개로 마르그리트 뒤라스라는 거대한 세계를 만나게 한다.
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 ★★★☆
나누고 싶은 것들.
1. 연인
2.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생애
3. 중국인과 '나'
4. 불멸성
5. 남성용 모자
23.02.08 -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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