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삶 혹은 거대한 세상에서 자신이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허무에 빠지기 쉽다. 허무는 "어차피 ㅇㅇ 할 텐데"라는 염세주의로 빠지게 하거나 "어차피 ㅇㅇ 하니까 놀고 마시자"라는 향락주의로 번질 수 있다. 유행처럼 퍼진 욜로족이나 파이어족 같이 요즘 나오는 ㅇㅇ족들도 결국 넓게 보면 허무주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허무주의는 근대 회의주의 사상에서 출발했다. 과거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었던 왕정, 신분제 같은 것들이 혁명의 시대를 거치며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여겨지게 되었고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며 허무주의를 철학에 끌어오며 근대 허무주의의 구도를 잡았다. 현재의 허무주의는 과거와 달리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에서 허무를 느끼는 주인공 헨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헨리는 전쟁의 한 복판에 있지만 전쟁을 잊고 싶기 때문에 술집이나 창루에만 박혀 있고, 전쟁을 혐오하는 병사들 앞에서는 "우리가 그만두면 안 돼. 전쟁을 끝내자" 같은 의미 없는 말만 한다.
웃긴 건 그는 구급차를 운용하는 장교로 사실 실질적으로 총을 쏘는 전쟁 병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총을 쏘는 군인이었다면 저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전쟁에서 이탈하기 위해 일부러 탈장대를 버리고 탈장을 한 병사가 구원을 요청했을 때 헨리는 매뉴얼대로만 행동한다.
그러던 헨리는 전쟁 중 포탄에 의한 부상으로 후방 치료소로 가게 되면서 전방에 있을 때 잠시 교류를 했던 캐서린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조금씩 변한다. 전쟁 속에서 허무와 염세주의로 가득 찼던 헨리는 사랑을 하면서 현실에 눈을 뜨고 삶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다. 전쟁통에도 애는 태어난다고 둘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캐서린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헨리는 전쟁 중 치료를 위해 잠깐 후방으로 온 군인이다. 때문에 치료가 끝나자 헨리는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전장에 복귀하자마자 헨리는 적군에 밀려 후퇴를 하는데 그 와중에 부하를 잃고 같은 아군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기도 한다. 과거의 헨리는 허무주의를 느끼면서도 전쟁에 대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헨리는 달라졌다. 사랑을 하고 자신의 아이를 갖고, 부하들이 의미 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전쟁의 염증을 느끼고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 작별을 고하고 탈영을 한다. 이제 그는 과거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했던 탈장 병사와 똑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탈영한 헨리는 도망자의 신분으로 여러 고초를 겪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캐서린과 만난다. 그리고 스트레사에서 스위스까지 전쟁에서 한 발자국 멀어진 곳에서 헨리와 캐서린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제 헨리에게 전쟁은 남의 일이고 허무주의는 과거의 자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곧 태어날 아기도 있다. 전장에서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이 있었지만 당장에 헨리와 캐서린에게 위험은 없다. 캐서린과 태어날 아기를 위해 먼 여정을 떠나며 헨리는 염세주의, 허무주의와 이별하고 앞으로 올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통찰한다. 소설 초반 창루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허무주의에 빠져 염세적이었던 태도에서 드라마틱한 성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참 얄궂게 흘러간다. 전쟁의 위협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캐서린은 전쟁이 아닌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는다.
평균 수명을 80살이라 할 때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80살 혹은 그 이상 언저리에 본인이 죽을 것이라 믿는다. 어느 누구도 그전에 갑작스럽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불현듯 갑자기 죽어버리기도 한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야마구치 사쿠라는 시한부 인생으로 자신이 췌장암으로 몇 달 뒤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이없게도 그전에 살인을 당한다. 남은 시간 몇 달은 살겠지라는 사쿠라나 80살까지는 살겠지라고 믿고 있는 우리나 남은 시간이 절대적일 것이라고 믿지만 때로 삶에는 그 절대적인 것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난다.
원래 사람은 그렇다. 다 죽는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그걸 알 시간도 없다. 삶은 인간을 그냥 내팽겨치고 규칙만 알려 준 뒤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바로 죽여 버린다. 아니면 아이모처럼 황당하게 죽기도 한다. 아니면 리달디처럼 매독에 걸려 죽거나. 어쨌든 결국에는 다 죽는다. 그건 분명하다. 그저 서성거리다 죽는 것이다.
삶은 무심코 흘러간다. 헨리가 모닥불 옆 개미를 구원해줄 수 없는 것처럼 신도 운명도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다. 그저 불 쪽으로 다가갔다 뒷걸음질 쳐 반대편으로 도망치다가를 반복하다 결국 죽는 것이다. 누구도 그 기한을 정할 수 없다. 그래서 존재는 허무하다. 전쟁의 허무에서 사랑을 통해 실존을 깨달았던 헨리는 캐서린과 작별함으로 다시 허무를 느낀다. 이 책의 제목인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무기는 전쟁 혹은 캐서린이다.
허무가 어디에서 오는지 실존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허무의 외로움은 낮보다 밤에 더 고통스럽게 온다. 헨리는 그 밤을 캐서린과 함께 하며 이겨냈다. 이제 헨리는 혼자다. 헨리는 그 밤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또다시 톨스토이의 말이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믿고 있는데 책을 읽다 보면 문득문득 톨스토이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무기여 잘 있거라 ★★★★☆
사람이 세상을 살며 너무 많은 용기를 가지고 있으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부수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든다. 그렇게 그들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하지만 세상이 그들을 다 부수고 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많은 이들이 더 강해져 나타난다. 그러면 세상은 더 강해진 그들을 끝까지 쫓아 가 없애 버린다. 선한 사람, 온화한 사람, 용감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없애 버린다. 그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도 예외는 없다. 다만 시간을 좀 둘 뿐이다.
나누고 싶은 것들.
1. 신앙심이 없던 헨리가 마지막 순간 캐서린을 위해서 신앙에 기대는 모습. 신앙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2. 욜로족과 파이어족 같은 ㅇㅇ족들에 대해
3. 허무주의와 실존주의
4.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살고 싶은가?
5.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6. 향락주의와 염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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