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영화가 나온 때가 2003년. 18년 전에 본 영화라 대부분 장면이 흐릿하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주인공이 자기 이름' 오대수'의 이름 뜻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정확하진 않을 수 있지만 주인공은 자기 이름을 '오늘 하루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군에 입대하고 시간이 지나 상병이 될 무렵 이상하게 그 대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오대수. 오늘 하루 대충 수습하며 살자.
군에서 나는 오늘 하루 대충 수습하자는 심정으로 약 2년의 시간을 보냈다. 군대를 제대한 지도 10년. 넷플릭스에 나온 DP라는 드라마를 보다 그때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매일 같은 하루의 반복. 목적도 없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며 욕먹던 때가 떠올랐다. 오늘 하루 대충 수습하자.라고 되뇌던 2년의 시간.
한 달이 지나 DP도 조금 흐릿해질 즈음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주인공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지내는 하루 동안의 일상을 날 것 그대로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올드보이의 대사와 나의 군 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도. 과거 겪었던 부조리나 고생했던 일화 때문에 생각난 것은 아니다. 오대수로 살았던 그 굴레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염려와 악몽이 떠올라서다.
이 책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있는 모든 인물(죄수든 간수든)들은 신념이나 의지, 생각 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하루를 보낸다. 먹고 자고, 남을 속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있어볼까 하는 잔꾀와 그저 이 하루만 어떻게든 보내자 라는 심정으로 하루를 산다. 주인공인 슈호프를 비롯해 강제노동수용소에 있는 죄수들은 "석방되면 무엇을 해야지." 라던가 "집에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지낼까?"라는 고민과 그리움도 없이 그저 "어떻게 하면 배를 불릴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이 작업을 어떻게 모면할까" 하는 당장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한다. 그들을 가두고 지키는 간수들 조차 오늘 하루 어떻게 좀 무사히 보낼까 라는 고민만 한다.
보통 인간은 과거와 현재 그 언저리에 산다. 현재를 산다는 건 착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따가 뭘 먹지. 내일은 뭘 하지. 어제는 이랬어. 이따는 이럴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는 미래와 과거 언저리에 두고 몸만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 때문에 많은 철학가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슈호프야 말로 정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현재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슈호프와 같은 삶은 아니다. 현재를 살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신념과 의지.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죄수든 간수든 수용소에서 오대수를 반복한다. 이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애초에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대의를 가지고 있다 수용소에 잡혀온 것도 아니고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간수들조차도 신념이나 대의라기 보단 나라에서 시켜서 왔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은 원초적인 본성에 따라 비참하게 하루만을 사는 인간을 보여주며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혹은 "이들은 왜 이렇게 사는가?" 라는 생각을 던지게 한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구소련 스탈린의 독재시대다. 그때로 보면 스탈린을 비롯한 독재 권력이다. 힘없는 개인은 언제나 역사와 사회의 비극 아래에서 철저히 정체성을 무시당하고 억압받는다. 그때는 스탈린이고 다른 때는 다른 누군가며 지금은 개인을 억압하려는 부패한 권력이나 기타 기득권 세력 혹은 사회 저변에 깔린 문화다. 완전 다른 종류지만 이 책을 읽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렸다
하루를 시작한 슈호프는 우여곡절 끝에 나름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후의 슈호프 일상은 딱히 보지 않더라도 오늘과 같이 오대수의 삶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은 매일 반복될 오대수의 삶은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삶이 언제 끝났는지만 언급한다.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오늘 하루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반복되는 삶을 슈호프는 또 다시 누군가에 의해 그 삶의 종료를 결정 받은 것이다.
의지 조차 거세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인간인 것일까. 슈호프의 하루가 애처로웠다.
정체성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고조차 없이 오대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인간의 삶.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죄수들은 생각조차 자유롭지 않다는데 몸도 생각도 자유로운 나는 오대수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나누고 싶은 것들
1. 오대수
2. 강제노동수용소의 다양한 인간군상 (종교, 예술 등등)
3. 평범한 나날의 비애
4. 솔제니친이 희망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 (침례교도 알료쉬카를 보고)
5. 내가 희망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6. 하루를 보내는 것과 지내는 것의 차이
7.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성에 대해
8. 내가 겪었던 가장 극한의 상황
2022 - 작성
2023.01.02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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