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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49.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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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외계인 경민과 지구인 한아의 아주 희귀한 종류의 사랑 이야기 『지구에서 한아뿐』.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정세랑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10년 전 쓴 작품을 다시 꺼내어 과거의 자신에게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며 다시 한 번 고쳐 펴낸 다디단 작품이다. 칫솔에 근사할 정도로 적당량의 치약을 묻혀 건네는 모습에 감동하는 한아는 저탄소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이야기와 시간이 담긴 옷에 작은 새로움을 더해주곤 하는 한아에게는 스무 살 때부터 좋아한, 만난 지 11년 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늘 익숙한 곳에 머무르려 하는 한아와 달리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경민은 이번 여름에도 혼자 유성우를 보러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다. 자신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경민이 늘 서운했지만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던 때,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져 소동이 벌어지고, 경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지 미묘하게 낯설어졌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게나 싫어하던 가지무침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아를 늘 기다리게 했던 그였는데 이제는 매순간 한아에게 집중하며 조금 더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달라진 경민의 모습과 수상한 행동이 의심스러운 한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간다고 혼란에 빠지는데…….
저자
정세랑
출판
난다
출판일
2019.07.31

 

 

 많은 창작자들이 창작을 하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냐는 물음을 받으면 곧 "어릴 때부터 공상을 줄 곧 했어요" 라던가 "맨날 독특한 상상을 해요"라고 답한다. 나도 나름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자부하지만 유수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나의 상상력은 싱겁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큰 축복이다. 마치 끊이지 않는 교통사고 영상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드는 한문철TV같은 것 아닐까. 그래서 매번 독특한 발상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를 보면 뇌 속을 들여다보거나 골방에 가둬두고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정세랑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넷플릭스에서 나온 "보건교사 안은영" 때문이었다. 1화를 보자마자 이 작가가 얼마나 독특한 발상을 가지고 있는지 단번에 알았다. 그리고 드라마 외에 이 작가가 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고 결국 정세랑 작가의 책 하나를 구매했다.

 

 

 

 지구에서 하나뿐. 지구에서 한아. 뿐.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말장난 같은 이 소설은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자 코즈믹 로맨스 소설, SF 로맨스 소설이다.

 

 시작은 리사이클링샵을 운영하는 한아가 남자 친구가 간첩인 것 같다며 신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구인 유리와 같이 공방 겸 리사이클링 샵을 운영하고 있는 한아는 오랫동안 연애 중인 남자 친구 경민이 있다. 한아와 달리 경민은 자유분방하고 불쑥 어디론가 멀리 떠나 연락도 잘 되지 않는 남자 친구다. 다정다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경민 때문에 둘 사이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길 법도 하지만 오랜 연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나름 적응을 했는지 둘 사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느날 처럼 경민은 한아를 두고 유성우를 보겠다며 캐나다로 떠난다. 간혹 여행을 떠나면 연락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경민을 두고 한아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경민이 떠난 후 며칠 뒤 저녁 캐나다 벤쿠버에 소형 운석이 충돌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곳은 경민이 유성우를 보겠다고 간 장소였다. 경민을 걱정하느라 마음을 졸이던 한아와 달리 경민은 며칠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국으로 돌아온다. 근데 돌아온 경민은 이전의 경민과 완전히 다른 행동을 보인다. 식성도 달라지고, 오랜 흉터도 없어졌을뿐더러 한아가 그렇게 강조하던 환경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심지어 한아는 경민이 입에서 초록색 빛을 내뿜는 것을 보고 만다.

 

 

 

 

 사실 캐나다에서 돌아온 한아의 남자 친구 경민은 진짜 경민이 아닌 경민의 몸을 빌린 외계 생명체였다. 외계 생명체 경민은 저 멀리 우주에서 한아를 보고 어떤 이끌림, 사랑을 느끼고 지구로 온 것이다. 책의 발상은 굉장히 신선하고 색다르지만 책의 구성은 굉장히 성긴 느낌이 있다. SF 장르기 때문에 SF 판타지 요소들이 곳곳에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그 설명이 조금 조악하다. 허나 작가가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책의 서사에 큰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기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 책은 한아와 외계 생명체 경민을 비교하기 위해 가수 아폴로와 팬클럽 회장인 이주영을 등장시켜 이 두 커플을 대조 하고 비교했는데, 그 두 커플의 조력자인 유리와 국정원 요원 정규도 두 커플과 마찬가지로 배치하면서 흐름을 따라기 쉽게 만들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외계 생명체 경민과 한아의 로맨스 과정이다. 환경에 대한 주제가 담겨 있는 책이라 친환경과 관련된 요소들을 계속해서 반복해 강조하는 점은 " 그래. 그럴 수 있어"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너무 휘뚜루마뚜루였다. 분명 둘은 서로 다른 생명체임에도 별다른 갈등도 사건도 없이 스토리가 전개된다. 대단하고 엄청난 사건이나 갈등 요소를 바란 것 아니었지만 둘은 다른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드라마에서 본 "나는 평범. 근데 내 남자 친구는 부자 혹은 능력자임에도 나만 사랑해" 류의 플롯을 그대로 따른다.

 

 그나마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내세우는 게 마지막 진짜 경민이 등장해 외계 생명체인 경민과 마주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도 힘이 빠진다. 엑스 보이프렌드 경민은 뒤늦게 한아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후회하며 사과의 말을 전하기 위해 한아에게 오는데 이를 지켜본 외계 생명체 경민은 순애보 남친의 정석대로 자리를 비켜준다. 엑스 보이프렌드 경민은 한아에게 뒤늦게 그 사랑이 소중했음을 이야기하지만 우주여행의 여파로 죽게 된다. 물론 이미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탓이라 한아도 한 줌의 사랑도 남아있지는 않아 보인다. 이후 외계 생명체 경민과 한아는 한아가 늙어 죽기까지 행복하게 보내다 한아도 외계 생명체가 됨으로 영원히 우주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소설의 상상력은 정말 놀라웠다. 다만 인과관계가 사람들이 외계 생명체 경민을 인지하는 것이나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평온하고 가볍게 지나가서 아쉬웠다. 작가의 의도가 인간관계의 내밀한 감정과 마음, 복잡하게 얽힌 관계보다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발랄한 친환경 SF 로맨스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가볍게 읽기 좋고 작가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세랑 - 지구에서 한아뿐★

 

 

2022.10.18 -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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