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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48.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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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현실에 대결하는 영혼의 발전을 담은 헤르만 헤세의 걸작 『데미안』.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던 작품으로, 열 살 소년이 스무 살 청년이 되기까지 고독하고 힘든 성장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안과 좌절에 사로잡힌 청춘의 내면을 다룬 이 작품은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세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목사인 부친과 선교사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회고적이며 서정성이 강한 신낭만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출발했으며,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깊이있고 내면적인 사고를 갖게 돼 증오보다 사랑, 전쟁보다 평화가 더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삶의 궁극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낮과 밤, 의식과 무의식,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지성과 관능, 각성과 도취 등 두 가지의 대립적인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싱클레어와 두 세계 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다만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인간의 고뇌,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는 청춘의 고뇌를 그려보인다.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9.01.20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어린시절이면 모르겠지만 20살 혹은 30살이 지난 사람은 거의 변할 수 없다. 변하더라도 정말 오래된 축적이 있어야지만 변하거나 살이 찢기고 피가 나는 고통이 있어야지만 변할 수 있다. 그만큼 사람은 고통 없는 교훈이나 말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적인 고민과 교훈이 헛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면의 탐구는 기반을 다져줄 뿐이고 진정한 깨달음은 고통 혹은 고통에 버금가는 충격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내면의 탐구가 없는 고통은 그저 고통으로 끝이 나고 고통이 없는 교훈은 그저 하루의 만족만을 주는 만족감으로 끝난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빛과 어둠의 세계가 공존하는 세계(가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성장과정을 겪는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알의 비유는 자아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싱클레어가 깨뜨려야 하는 기존 세계다. 여기서 데미안의 역할은 싱클레어가 추구하는 자아정체성이 완성된 상태 혹은 싱클레어를 이끌어주는 구도자라 할 수 있다.

데미안은 시의적절하게 싱클레어를 위험에서 구출해하기도 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게끔 지적 자극을 주기도 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 덕분에 어둠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알게 모르게 기른다. 책의 초반부터 끝까지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주는 메시지는 일관된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라는 거다. 그래서 데미안은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의 차이라든지 '카인의 표식'에 대한 이야기로 싱클레어를 계속 자극한다. 작가가 데미안을 통해 전달하고 싶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자아정체성의 확립이다. 이 책이 왜 청소년 권장도서일까를 생각해 보니 그 시기가 아니면 차곡차곡 자아정체성을 확립시키기란 어려워서 청소년 권장도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의 고뇌는 후반부로 갈수록 극에 달한다. 후반부 청년으로 성장한 싱클레어는 평소 꿈에 그리던 베아트리체와 닮은 데미안의 어머니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싱클레어가 진짜 친구의 어머니에게 사랑에 빠진 나쁜 놈일 수도 있지만, 나는 싱클레어가 추구하는 구도자의 모습과 청년기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합쳐진 것을 상징적이라고 봤다. 이 책이 섹슈얼리티 소설이라면 에바 부인과 데미안이 사랑에 빠져야 하지만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거리를 두고 그에게 깨달음을 던져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에바 부인과 데미안은 같은 역할이다. 싱클레어의 내면이 점점 다져질수록 싱클레어는 알을 깨고 나오려는 조짐을 보인다.





 결국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동시에 변화에 대한 꿈을 꾸고 그에 화답하듯 현실 세계는 큰 전쟁이 터진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그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 중 싱클레어는 포탄을 맞는데,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깨어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동안 내면의 탐구를 계속했음에도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싱클레어는 피가 나고 살이 찢기는 거대한 충격을 받고서야 자아정체성을 확립한다. 어찌 보면 포탄을 맞고 갑자기 각성을 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포탄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은 내적인 탐구를 계속하더라도 거대한 충격. 즉 피가 나고 살이 찢기는 정도의 거대한 충격(고통)이 없이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책의 마지막 줄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모습을 본다.

비로소 싱클레어는 알에서 깨어난 것이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자아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데미안의 목소리를 빌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연대를 하고 편을 가르고 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시기와 요즘의 시기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단에 속하기를 원한다. 집단은 개인에게 생각과 신념을 제시한다. 개인이 스스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누군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쉽다. 자신의 내면을 모르는 사람, 고뇌가 없는 사람들은 집단에 맹렬하게 빠진다. 요즘 들어 계속 세상은 점점 더 분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대는 없고 서로 각자가 보는 방향만 계속해서 파고든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교집합이라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차집합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차집합이 커질수록 집단은 더 이기적이고 갈등은 심화된다. 예전에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어떤 교집합이 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없는 것 같다.


최근 눈이 많이 왔었다.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작게 건 크게 건 각자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누가 만든 지 모를 눈사람을 괜히 부셔 트리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괜히 다른 사람이 만든 눈사람을 부셔 트리는 몇몇 사람들을 보고 대중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화를 냈다. 곧장 눈사람을 부셔 트린 사람들은 사과를 했다. 그래도 눈사람에 얽힌 순수한 마음의 교집합은 아직 남아있구나 란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순수한 연대는 어디에. 교집합은 어디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헤르만 헤세 - 데미안 ★★★★★



나누고 싶은 것들.

1. 자아정체성이란?
2. 우리 사회의 교집합
3. 내가 생각하는 청소년 권장 소설
4. 에바 부인, 데미안
5.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알

2021 - 작성
2022.10.14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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