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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45. 달콤한 노래 - 레일리 슬리마니.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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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 여성 작가로는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수상자가 된 레일라 슬리마니의 두 번째 소설로, 인생 전체에 걸쳐 배척당하고 끊임없이 거절당하고 모욕당하며 결국은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특히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 강요받는 모성, 짓밟힌 개인성을 그린다. 두 아이가 끔찍하게 살해됐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해 보이던 보모 루이스의 손에. 하지만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오히려 잔인한 살인자 루이즈의 삶, 마약과도 같은 고독 속에서 평생을 견뎌온 그녀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왜 그토록 아끼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두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낀 미리암은 변호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아이들을 돌봐줄 완벽한 보모를 구했다. 까다롭고 철저한 면접을 거쳐서 만난, 아이들이 첫눈에 선택한 여자, 루이즈.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보모 루이즈 덕분에 모든 생활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녀는 이제 집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루이즈는 미리암 가족과 함께 있으면 어떤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행복이 그들에게 속해 있다는 고통스럽지만 뜨거운 확신. 하지만 손에 잡힐 것만 같던 그들과의 삶이 오히려 계속 멀어지는 것 같아 점차 초조해진다. 또다시 완전히 혼자가 되고, 고독에 잠식당할까 두렵다. 결국 루이즈는 영원히 이 가족에 속해 있을 방법을 생각해내는데…….
저자
레일라 슬리마니
출판
아르테(arte)
출판일
2017.11.03

 

 

 

 

소설은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기가 죽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연상케 하는 이 문장은 레일라 슬리마니가 직접 알베르 카뮈에게서 영감 받아썼음을 말했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폴과 미리암이라는 부부 사이에서 두 아이가 태어난다. 부부는 아이들이 태어남에 따라 육아로 인한 고통과 자신의 생활(미리암의 경력단절)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육아로 경력 단절되어 있던 미리암은 우연한 기회로 일을 다시 시작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루이즈라는 보모를 고용한다.

 루이즈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너무나 잘 돌본다. 심지어 보모일 뿐만 아니라 폴과 미리암의 집안일까지 전부 완벽하게 처리해놓는다. 부부는 루이즈에게 점점 만족하고 그녀에게 푹 빠지게 된다. 집안이 잘 풀리니 그들의 사회생활도 탄탄대로를 걷는다. 부부는 루이즈로 인해 집안이 편안하고 신경 쓸 게 없어 좋아하지만 그럴수록 집안의 깊숙한 곳까지 관여하고 침범하는 루이즈가 약간은 불편해진다. 처음에는 루이즈를 추켜세우기 바빴던 부부는 점점 집안의 더 내밀한 곳 까지 들어오는 루이즈에게 왠지 모를 기분 나쁨을 느끼고 그녀를 멀리한다. 루이즈와 부부가 조금씩 멀어짐에 따라 이야기는 점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다 결국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루이즈가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책의 끝에 루이즈가 왜 아이들을 죽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떠한 결과가 하나의 원인만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우리는 루이즈가 ~해서 그러진 않았을까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루이즈가 부부의 삶에 그리고 아이들과 어떻게 가까워지고 조금씩 멀어지는가다. 그렇다고 루이즈가 그들과 멀어짐에 따라 사건이 기인되었다고 할 수 없다. 중간중간 루이즈의 과거가 삽입이 되는데 그 과거들을 보다 보면 루이즈가 끔찍한 사건을 벌인 게 과거의 축척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루이즈가 아이들을 죽인 까닭을 자신의 정체성의 분리 개별화와 정체성을 확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본다. 루이즈는 과거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주지도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딸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큰 관심도 없다. 그러던 중 폴과 미리암이 그녀에게 좀 과한 친절을 베풀었고 루이즈는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바로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라는 그 기분. 루이즈는 오직 그들 속에서만 행복감을 느끼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 일체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들이 점점 커 루이즈가 돌볼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루이즈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자리잡았을 것 같다. 그 와중에 부부와 멀어져 보모의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루이즈에겐 자신을 부정당한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자신이 필요하지 않아질 수 있다는 두려움(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두려움). 자신의 필요성을 그들에게 부여해 다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 그 모든게 루이즈를 무너뜨렸고, 결국 그녀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부가 새로운 아이를 만들게 하기 위해 커가는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정체성의 분리 개별화는 중요하다. 나의 꿈과 나. 그리고 나의 삶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만약 정체성의 분리가 되지 않으면 사람은 정체성의 괴리 혹의 붕괴가 일어날 때 무너진다. 가령 청소년기에 정체성 분리가 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의 꿈과 삶이 부모가 원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혹은 꿈이 실현된 이후 괴리감을 느낄 때 무너진다. 또 다른 예로 간혹 회사원이 회사 생활에서 실패를 겪고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자살했다는 뉴스가 들려올 때가 있다. 이는 회사의 나와 사생활에서의 나를 분리하지 못해 기인한 일이다.(물론 그것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깃털은 아니겠지만) 회사에서 스트레스와 실패는 회사라는 사회에서 역할의 문제이지 큰 틀에서 개인의 실패는 아니다.

 

 

 

 

 

 

 

 그렇다고 루이즈가 아이들을 왜 죽였을까? 를 위의 이유로 오롯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만약 저 비유만이라면 루이즈는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시도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루이즈의 자살시도는 아이를 죽인 이유가 단순히 정체성의 분리 실패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다.

루이즈가 왜 아이들을 죽였을까? 를 생각하다 보니 도대체 루이즈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생각까지 도달한다.

루이즈는 누구지? 루이즈의 불안은 뭐지? 그녀 안에 있던 분노는 뭐지?

 

사라예보 사건만으로 세계 1차 대전을 설명할 수 없듯 모든 사건에는 그간의 축척이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느꼈던 그 불편함. 왠지 모를 기분 나쁨을 역설적인 책의 제목인 달콤한 노래에서 똑같이 느꼈다.

 

왠지 모를 기분 나쁨과 불편함. 버릴 것 하나 없는 것들

레일라 슬리마니 ㅡ 달콤한 노래★★★★

 

 

 

나누고 싶은 것들

1. 루이즈는 어떤 사람인가?

2. 루이즈는 아이를 왜 죽였을까?

3. 닭뼈의 의미

4. 물

5. 급속도로 진전된 인간관계

6. 일체감과 소속감에 대해

7. 자아정체성의 분리와 개별화

8. 중산층의 위선

9. 왠지 모를 기분 나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10. 기생충과 달콤한 노래

 

2020 - 작성

2022.10.26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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