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등장인물 히긴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이고, 갈라테이아는 리자(일라이자)로 암시된다. 극은 길거리에서 꽃을 팔던 하층민인 리자가 음성학자인 히긴스와 피커링 대령을 만나 귀족사회의 언어를 익혀 하층민에서 귀족사회로 탈바꿈되는 이야기다.
총 5막 구성으로 1막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소개와 조우. 2막에서는 리자의 변화. 3막에서는 성공적으로 바뀐 리자의 사교계 데뷔. 4막에서는 히긴스와 리자의 갈등. 5 막은 그 결론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조각상(갈라테이아)을 사랑하고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함으로 조각상이 사람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현대 다양한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나, 한 사람이 다른 이의 도움으로 신분 상승 혹은 더 나은 삶으로 이어져 사랑에 빠진다는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들이다. 후자의 경우 한국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말단 직원이 오너 일가를 만나 단번에 높은 지위로 올라가 사랑에 빠지는 것. 평범했던 인물이 전설적인 인물을 만나 위대한 학자 혹은 운동선수, 예술가 등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에서는 이런 로맨스적인 것들은 모두 배제하고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고작 언어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신분 상승을 한다는 점이나 히긴스의 장난으로 단숨에 부자가 된 둘리틀, 리자와 히긴스의 갈등을 보여주며 신분제도와 경제 사회, 여성의 권리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쓰는 말투를 바꿨을 뿐인데 리자가 왕족이 아니냐며 수군대는 다른 귀족들, 청소부에서 우연히 부자가 된 둘리툴에게 붙는 사람들은 지금 현대로 치환해도 똑같은 것들이 많아 실소가 나왔다.
리자와 히긴스의 관계는 피그말리온 이야기의 마지막 결말에 대한 뒤틀림 같아 재밌었다. 은인이 수혜자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때 본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수혜자는 은인을 마냥 좋아하거나 존경할 수만은 없다. 모종의 지배관계가 된다. 여기서 지배라는 것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사랑의 성립, 혹은 복종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극에서의 지배는 동등한 관계로 대우하느냐 안 하느냐다.
5막에서 리자는 히긴스에게 피커링은 자신을 동등한 관계(숙녀)로 대하지만 히긴스는 그러지 않는다며 불평한다. 이에 히긴스는 자신은 누구나 똑같이 대하며 그게 신분의 고하나 성별의 문제와는 상관없다고 말하며 리자를 비난하고 힐난한다. 그러나 리자는 히긴스가 본인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똑같이 대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의도와 본성과 상관없이 리자는 동등한 관계로써 친밀감을 원한다고 말한다. 남녀관계의 사랑이 아닌 동등한 관계의 우정 혹은 애정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히긴스는 리자의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 원래 본인은 누군가에게 잘 대해주는 성격이 아니며 그저 냉담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리자가 슬리퍼를 가져다주며 하녀처럼 자신을 받드는 것도 원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면 리자를 내치겠다고 한다. 히긴스는 마지막으로 리자에게 자기 삶의 방식은 바꿀 수 없으니 그게 싫으면 떠나라고 말한다.
히긴스의 말대로 그는 그녀를 지배하려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리고 모두와 동등하게 그저 냉담한 성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둘이 시작이 은혜를 베푼 자와 받은 자기 때문에 그가 원래 그러한 성격이고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둘은 지배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다. 히긴스로 써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은 정말 그녀를 지배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히긴스는 그녀를 위해 동등한 관계로 매너나 애정을 줄 생각은 없다.
리자가 1막에서의 리자였다면 그녀는 히긴스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리자는 언어를 배웠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으며 다양한 사고를 한다. 5막에서의 리자는 자주적인 여성이자 독립적인 한 인간이다. 그러기에 리자는 히긴스의 슬리퍼를 집어주거나 넥타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관계를 버리고 그를 떠난다. 이제 독립적인 사람이 된 리자는 누군가 누구를 지배하지 않고 동등한 관계로써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 결과로 극 중 인물인 프레드와 결혼을 한다.
여기까지로 극이 끝난다면 "리자는 행복한 나날이 되었습니다" 로 마무리가 돼야 하지만 인간사는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조지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의 후일담을 통해 그 뒤의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리자와 프레드는 결혼을 한다. 둘은 독립을 하지만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리자가 변하긴 했으나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뀔 수는 없고 없던 능력이 생기지도 않는다. 때문에 리자와 프레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 한동안 히긴스와 피커링에게 도움을 받으며 지내게 된다. 세상이 녹록지 않아 비록 리자는 다시 히긴스와 피커링의 도움을 받게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리자의 독립이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독립은 충분히 가치 있고 박수받을만하다.
1913년에 초연한 피그말리온을 지금 현재로 치환한다면 꼭 여러 다른 관계로도 대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부모와 자식. 사장과 직원. 친구와 친구의 관계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면 순종하길 원하는 부모와 독립하고 싶어 하는 자식 간의 관계다. 최근에 나온 작품으로 생각하면 스카이캐슬일 것이고 조금 예전 작품이라면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른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로 본다면 넷플릭스에서 나온 아메리칸 팩토리가 떠오른다.
인간사는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기에 모든 관계가 동등한 관계는 되지 않는다. 관계라는 것은 의도와 상관없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관계는 슬프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당신은 연인일 뿐이지 그녀의 판사가 아니다.
조지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추가로 이 극에 나오는 조연 격인 피커링이나 둘리틀, 히긴스 부인 등등 모두가 매력적이고 각자로도 무게감이 대단하다. 만약 어디에서 이 극을 상연한다면 꼭 보러 가고 싶다.
나누고 싶은 것들
1. 희극에 대해
2. 조지 버나드 쇼의 다른 작품들
3. 피그말리온 효과
4. 피그말리온과 로맨스
5. 현대에도 신분 사회가 있는가?
6. 극에서 나오는 언어를 현대로 풀이하면?
7. 인간의 권리와 불평등
8. 영화판 피그말리온
9. 교육의 문제
10. 둘리틀이 말하는 중산층이기에 불행해졌다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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