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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44.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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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페스트'라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20세기 문학이 남긴 기념비적인 고전으로 꼽힌다. 무서운 전염병이 휩쓴 폐쇄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묘사된다. 인물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절망과 맞서는 것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의지이며,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이야기한다. 이번 한국어판은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가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다.
저자
알베르 카뮈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1.04.03

 

 

'페스트'는 오랑시를 덮친 페스트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페스트가 덮친 도시에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고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일전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은 따뜻한 무관심이라는 것을 통해 알베르 카뮈가 생각하는 개인의 윤리를 제시하였다. 이방인이 개인의 차원이라면 페스트는 개인을 넘어서 집단, 혹은 집단속의 개인의 윤리, 도덕을 제시한다.

 

 


소설은 페스트로 상징했지만 다른 위기 혹은 악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오랑시에 페스트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구분을 하자면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경비원 미셸과 천식 환자 노인, 오통판사의 아들이다. 이들은 페스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숨어있다 희생당하는 부류다.

두 번째는 파늘루 신부와 랑베르, 오통이다. 셋은 처음에는 페스트에 저항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이유로 피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각성하여 후반부에는 적극적으로 저항에 가담하는 인물들이다. 랑베르는 원래 오랑시의 시민도 아니고, 자신의 연인이 오랑시 밖에 있기 때문에 도시를 탈출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의사인 리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이 도시 밖에 떨어져 만나지 못하는 처지라는 것을 듣고 모종의 소속감을 느끼고 리외를 돕기로 결정한다. 파늘루는 페스트를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어린아이가 페스트로 죽는 것을 보고 회의감에 혼란을 겪다 자원봉사를 한다. 오통은 자신의 장모와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걸려 죽고 자신 또한 격리되어 생활하다 일반 시민들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단에 들어가 리외를 돕는다.

세 번째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인물들이다. 페스트가 오기 전에는 시민들에게 섞이지 못하다 위기가 닥치자 그걸 기회로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섞이는 인물이다. 밀수를 통해 돈을 버는 코타르나 도시 밖으로 몰래 탈출을 돕는 조력자인 곤잘레스나 가르시아가 이런 인물들이다.

네 번째 부류가 바로 알베르 카뮈가 추구 혹은 제시하는 인물이다. 소설에는 의사인 리외와 장 타루 조제프 그랑과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위기가 시작되자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각성 과정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위기 속에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알베르 카뮈가 생각하는 영웅이 되는 사람들이다.
장 타루는 원래 외지인이지만  페스트가 닥치기 전 오랑시에 와 생활을 하다 의사인 리외와 함께 자원봉사단을 꾸려 페스트에 적극적으로 저항을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고 느낀 것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했던 정치생활을 통해 인간 존엄을 추구하지만 역으로 비인간적인 행동을 일삼는 집단의 위선을 겪고 목적과 수단의 확고한 기준을 갖게 된다. 이 기준은 목적과 수단 모두 정당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인간 존엄에 대한 각성을 한 장 타루는 오랑시에서 리외를 도와 자원봉사단을 꾸려 적극적으로 페스트에 저항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페스트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의 서술자이자 주인공 격인 의사 리외는 처음부터 신념이나 인간 존엄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게 일하며 페스트가 닥친 사회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점차 각성하게 된다. 그는 거창한 목표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저 삶. 삶 뿐이다. 페스트에 걸리지 않고, 페스트를 남에게 전파시키지 않고, 페스트에 걸리더라도 무조건 살아남는 것.  삶 자체다. 그렇다고 리외가 인간의 존엄성, 사랑, 정의, 종교, 선과 같은 가치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리외는 이 모든 가치들을 존중하지만 결국 이 가치들도 삶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가치들이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삶을 위해 리외는 페스트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인물들이 한데 뒤엉키며 결국 각 사람들의 노력 끝에 페스트는 물러가고 오랑시는 승리한다. 이 승리는 리외의 승리도 장타루의 승리도 아니다. 연대의 승리다. 카뮈는 적극적인 저항을 하는 네 번째 부류의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모두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소설 곳곳에서 계속 말한다. 저항과 극복은 개인에서 집단으로 승화돼야 의미가 배가 된다. 리외, 장타루, 조제프 그랑, 랑베르, 파늘루 등 집단을 이루어 저항을 했기 때문에 오랑시가 승리할 수 있던 것이다.



 


페스트의 키워드는 우리(집단)의 저항이다. 카뮈가 제시하는 집단의 윤리란 선을 위해 우정과 연대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제서야 카뮈의 페스트가 각광을 받는 것은 그동안의 다양한 위기 속에 모두의 공감대가 부족했다면 이번 코로나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위기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애석하다.

카뮈가 지향하는 저항하는 집단을 위해 리외나 랑베르, 장 타루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언제나 이상향이다. 사회 도처에는 코타르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아니 요즘은 코타르 같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같이 좋기보다 같이 나빠야 안도하는 사람. 내가 불행할 때 남도 불행해야 위안받는 사람들. 남의 행복에 배 아프고 불행에 웃는 사람.

언젠가 동생에게 성악설과 성선설중 어떤 게 맞는 거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교육자를 희망하는 사람이 그래도 성선설을 믿어야지."라고 동생은 답했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사실 애초에 나쁘게 태어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미래는 점점 더 많은 소수의 그룹으로 수렴해가지는 않을까란 의문도 든다.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

위기를 이겨내는 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알베르 카뮈 - 페스트 ★★★



나누고 싶은 것들.

1. 페스트와 같은 위기가 왔을 때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할까?
2. 내가 불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타인이 나와 동일한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한 적은?
3.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4. 진정한 연대와 공감은 이루어질 수 있는가?
5. 코로나와 페스트
6. 목적과 수단의 위선을 경험한 적은?
7. 개인의 윤리와 집단의 윤리
8. 페스트에 나오는 다양한 문장들
( 어쩌면 나 역시 행복을 위해 뭔가 하고 싶기 때문일 거예요. // 거짓말을 하는 건 너무 피곤하죠. )
9. 따뜻한 무관심 과 연대하는 저항
10. 신념과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참고

 

오염된 피 사건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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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2020- 작성
2022.10.05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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