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배달 앱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걸 전화 공포증이라고 한다. 주문 전화는 어떤 감정교류도 의견 교류도 없는 주문 전화일 뿐인데 왜 두려울까. 내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전화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대수롭지 않은 나를 이해 못 할 것이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대수롭지 않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크고 중요한 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일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 입안의 작은 생채기도 겉으로 보면 작지만 혀로 만져보면 그 무엇보다도 크게 느껴진다.
[스포주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어린 주인공 미하엘과 성숙한 여자인 한나와의 사랑 이야기로 그들의 사랑을 따라 전개된다. 책 초반을 보면 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로맨틱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 같지만 점점 전개가 이어질 수록 감춰진 비밀이 수면위로 슬금슬금 떠오른다.
책은 총 3부로 1부는 한나와 미하엘의 만남. 2부는 헤어진 둘이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순간 3부는 그 후의 일을 다루고 있다. 책은 세계 2차 대전의 역사문제와 개인. 사랑과 죄의식. 자존심과 약점. 이해와 법이라는 문제를 촘촘하게 엮어놓았다.주인공 미하엘이 사랑하는 여인인 한나는 앞서 이야기한 전화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공포증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다. 모든 사건의 시작과 비밀은 이 두려움 때문에 야기된다. 문맹이라는 약점 때문에 한나는 계속 도망치고 불리함을 감수하는 등의 다양한 고초를 겪는다. 심지어 정말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까지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면 한나와 같이 개인의 약점 때문에 불합리함을 겪고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타인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줘도 되는 걸까?
당신이 만약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말해야만 상황이 좋아진다면 당신은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내 친구나 가족이 감추고 싶은 사실을 말해야만 좋아지는 상황인데 그 상대가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면 나는 말해야 할까?
한나의 문맹과 2차세계대전, 범죄의 진실과 숨김같은 거대한 것 뿐 아니라 한나와 미하엘 둘에겐 남녀 간에 흔히 발생하는 오해와 이해. 사랑과 죄의식이 있다. 미하엘에게는 과거 한나를 모른척했다는 죄의식과 죄를 지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한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속였다는 오해가 있다. 한나에게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미하엘에게서 도피를 했던 미안함과 사랑에 대한 오해가 있다. 둘 모두 서로에게 상처를 받아 상대를 미워하지만 또 각자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미안함과 죄의식 때문인지 둘은 서로를 잊으려 했지만 계속 서로를 끌려한다.
둘은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을 쓴다. 한나는 미하엘을 먼발치에서 나마 계속 지켜보는 것을 결정했고, 미하엘은 한나를 떨치지 못해 그녀를 과거에 묶어 놓고 사랑을 한다. 과거라 함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한나가 지은 죄를 모르던 시절이다. 때문에 미하엘은 현재의 한나를 만나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옛날처럼 먼발치에서 책을 읽어줄 뿐이다.
시간이 흐른 후 결국 미하엘은 한나를 만나게 되지만 한나의 모습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과거의 그녀. 과거의 순간을 사랑해서일까. 어린 시절 미하엘이 한나에게서 비누냄새와 같은 좋은 냄새를 맡았다면 이제는 노파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한나다. 겉모습과 느낌이 달라도 한나다. 찰나의 순간으로 미하엘은 한나는 늙어도 한나임을 다시 깨닫지만 이미 늦어버린다. 한나는 미하엘과 마주친 불과 몇 초 만에 그의 눈에서 실망감을 알아챈다.
이후 한나는 자살한다. 한나가 자살을 한 까닭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많겠지만 미하엘의 반응에 대한 아픔이 스모킹건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비친 실망감은 그녀로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비보에 미하엘은 굉장한 슬픔을 느끼지만 버스는 떠난 순간 잡을 수 없고 총은 쏜 순간 되돌릴 수 없다.
한나가 자살한 후 미하엘은 그녀가 지냈던 방을 통해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알게 된다. 꼬마라고 불리던 시절에 그는 그녀가 주는 사랑은 전혀 모르고 자신만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하엘은 항상 의구심이 있었다. 이제는 그 의구심이 해결되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미하엘은 글자를 알아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던 리더(The leader) 였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은 읽지 못하는 리더였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 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 ★★★☆
나누고 싶은 것들
1. 미필적 고의
2. 자신의 역할에 대한 수행과 도덕적인 부분이 대립될 때 어떠한 선택을 하여야 할까?
3. 집단의 신념과 개인의 신념 중에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
4. 역사 아래에서 개인은 무력하기만 한 존재인가?
5.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손해를 본 적이 있는가?
6. 사랑하며 오해를 했던 순간들
7.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가?
8.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
9. 책을 소리 내서 읽어본 경험에 대해
2019 - 작성
2022.09.21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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