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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32. 방랑자들 - 올가 투카르추크.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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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방랑자들』. 소설을 가리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생생하게 빛나는 이 작품은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을, 2018년도에는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했다. 여행, 그리고 떠남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으로, 여행길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언어의 힘을 빌려 작품 속에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이 방대한 여정에 포함된다. 어딘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를, 무엇을,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다다르려 애쓰는 사람들, 이렇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저자
올가 토카르추크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9.10.21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장편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장편소설이라고 했지만 단편 소설들을 묶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밀란 쿤테라의 소설 같은 느낌이나 에세이 같은 느낌도 준다. 책의 시작은 한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여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와중에 이야기가 있고, 편지도 있고, 생각도 있다. 한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없다. 주인공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을 주목하여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책을 방랑해야 한다.

어디선가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문맹률은 적으나 문해맹률은 높단다. 단어 하나하나는 알고 있지만 문장 전체를 두면 이해력이 낮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짧은 글을 선호하고, 단어 하나 혹은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성향이 강하단다. 만약 그 기사 말이 맞다면 이 책은 좀 읽기 어려운 책일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제목인 방랑자처럼 여러 의식의 흐름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처음 부분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 챕터나 툭 꺼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서 툭 하고 터져나오느 사유의 결에 몸을 맡기고 사색해야 한다.  

 

그러기에 나는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텍스트의 주인이 되는 대신 씨앗을 파종하는 게 주된 업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내가 라오스 여행을 할 때 6시간 동안 산 중턱을 버스로 달려야 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계속 눈에 띄었다. 그는 창밖을 한참 쳐다보다가 공책을 꺼내 무언가 끄적였다. 한 시간을 내리 쓰다가 다시 창밖을 보고 다시 공책에 무언가를 썼다. 그런 그를 보고 나도 메모장을 꺼내 그와 그 산길에 대해 일기를 썼다.

 

"방비엥 가는 길. 어떤 남자가 글을 쓰고 있다." 다음 문장을 채 쓰기 전에 그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안녕? 일기 쓰는 거야?" 남자가 먼저 살갑게 나에게 물었고 "응. 너도 일기 쓰고 있었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모든 것을 쓰고 있어."라고 하더니 1년째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길에서 본 것들, 차 안에 있는 우리들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썼노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그에게 "나도 방금 너에 대해 썼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 남자는 웃으며 좋아하더니 방금 우리의 대화를 글로 써서 꼭 인터넷에 올리거나 책을 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쓰는 낯선 언어(그에게는)로 "라오스 산길을 지나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글을 쓰는 백인 남자"라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자기 이야기인 줄 알고 나를 떠올리겠노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가 한 부탁을 똑같이 했다. 정말 오랜 기억이고 그 후로 내가 썼던 메모장은 잃어버렸지만 방랑자들을 읽으며 그를 떠올렸다.


그는 공책을 잃어버리지 않고 책을 내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까? 아니면 그 일지들을 어느 한편에 넣어두고 잊어버렸을까? 그가 나와한 약속을 지켰는지 문득 궁금하다.


 이 책 한 권으로 다양한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하나로 생각이 이리 저리로 튀었다. 나는 또 떠올랐다.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을. 비행기 안은 엄마의 뱃속처럼 고요하고 일정한 울림을 주었다. 나의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바깥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멈추어 있다. 27일 오전 8시에 출발했지만 나는 27일 오전 8시에 다시 도착한다. 시간은 분명 흐르는데 바깥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는 시간을 역행해 간다. 다른 사람들은 코를 골며 잠에 들어 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역설을 느낀다. "이봐요!! 다들 일어나 봐요! 우리의 시간은 흐르는데 우리는 출발한 시간에 도착을 한데요. 놀랍지 않나요?"라고 소리치고 싶다. 눈을 감고 시간의 멈춤을 느낀다. 깨어있는 것 같지만 깨어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분명 계속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미 잠들었다.

 


친구도 떠오른다.

 

내 주변에는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 많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나는 주변에 재능이 많은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무언갈 만들고, 그리고, 노래하고, 쓰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그것을 보고 "거봐 잘하잖아"라고 말하고 싶다. 한 번은 어떤 친구를 강하게 몰아세운 적이 있다.
"도대체 왜 꾸준히 하지 않는 거야? 너 잘하잖아 좀 더 해봐"
"해야지...." 친구가 답했다.
나는 그때 조금 화가 나서 다그쳤다. "네가 안 하는 거잖아. 너 잘하면서 왜 안 하냐? 욕심 있잖아. 좀 더 부지런하게 한번 해봐. 지금 하는 일 별로라면서 과감하게 몇 달만 딱 집중해서 해봐" 나는 어떻게든 그 친구의 재능을 보고 싶었다. 그 완성품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그 친구가 말했다.
"미안한데 나는 잘하는 게 아니야. 너 눈에만 그래 보이는 거지. 재능이 전혀 없어. 그냥 좋아하는 재능만 있지. 나는 못해. 내가 하는 방식은 완전히 틀려먹었어! 내가 나를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해. 난 바꿀 배짱도 용기도 없으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양이 나무와 집들 사이로 우리를 계속 간질였다.


 최근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잃었다. 왜 잃어버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여행의 이유를 잃어버린 것 같다. 여행의 이유를 잃어버려 이제 다시는 떠나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통해 사유의 여행을 하고 왔다.

 이미지, 대화의 일부, 냄새의 파편, 조각나 있는 생각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것으로 나는 방랑을 했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누군가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떠날 채비도 없이 나는 강제로 이끌려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매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순간의 이상한 기분. 비행기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의 느낌.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의자에 앉았을 때 느끼는 감정.


여행 후의 느낌 그 모든 것을 책을 덮고 느꼈다.
올가 토카르추크 - 방랑자들 ★★★



나누고 싶은 것들
1. 방랑자들
2. 가장 인상 깊은 챕터
3. 떠오르는 생각
4. 순례와 방랑, 여행의 의미
5. 악행에 대한 보고서
6. 내가 생각하는 내 내면에 깊이 감춰진 결함은?
7. '거기에 있었다'는게 과연 어떤 의미 일까?
8. 선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일까?

2018 - 작성
2022.09.20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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