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 7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나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와 마찬가지로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을 담은 SF소설이다.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을 가지고 인간 실존에 대한 이야기나 복제 인간 이야기를 그리는 건 SF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것 들이다.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주제고 플롯이긴 하지만 미키 7은 다른 SF 소설들과 달리 스토리가 쫀쫀하고 술술 읽혔다.
내가 SF소설을 별로 안좋아하는 이유 중 제일 큰 것은 작가들이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설명이 많다 싶으면 주석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단다. 물론 새로운 장르와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설명을 필요하지만 그동안 SF 장르도 무협이나 판타지처럼 충분히 대중들에게 노출이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굳이 설정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들의 생각은 나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래도 SF 장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 하면 영화 Her이다. Her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특출난 설정 때문이 아니었다. 보편적인 가치인 사랑이라는 것을 가지고 미래시대, 허구의 시대에서 생길 법한 갈등과 고민을 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키 7이 담고 있는 인간 실존과 테세우스 배의 역설도 엄청나게 특별한 주제는 아니지만 그 시대와 세계관에서 생길법한 갈등과 고민을 적절히 잘 녹여냈다.
미키7은 전 우주에 인류가 살만한 개척지를 찾아 드라카 라는 비행선을 타고 니플 하임이라는 개척지에 도착한 개척단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미키는 흔히 이런 개척단에 있을 법한 경비대나 과학자, 생물학자, 조종사는 아니고 익스펜더블이라는 존재다. 익스펜더블은 작중 복제인간이자 재생산 가능한 소모품 인간으로 개척단에서 가장 위험한 일에 제일 먼저 투입이 되는 직업이다. 익스펜더블이 되면 정신과 기억을 주기적으로 시스템에 업로드를 시키고 임무수행 도중 사망하게 되면 신체를 되살려 업로드한 정신을 다시 신체에 다운로드 시켜 되살린다.
미키7은 그동안 6번의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살아난 7번째 익스펜더블인 미키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키 7이 어이없이 발을 헛디뎌 얼음 구덩이 아래로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상처를 입었지만 구출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미키 7은 베르토와 상의 끝에 상부에 자신이 죽은 것으로 보고하도록 합의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미키 7은 토착 생명체이자 적이라고 간주했던 크리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살아남아 기지로 생환하지만 그 사이 이미 되살아난(?) 미키 8을 마주하게 된다. 미키 7에서는 과거 끔찍한 역사를 이유로 익스펜더블이 동시에 두 명 존재하는 것을 매우 엄격히 금지하고 죄악시하고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한다. 그러나 둘은 어떤 미키가 죽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차후 위험한 임무가 발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 미키가 사망하는 것을 약속하고 불편한 공존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친구 베르토와 사령관인 마샬, 여자친구 나샤를 비롯한 동료 캣과 불의의 사건으로 두 명이 된 미키 그리고 낯선 행성의 미지 생물체와 벌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작중 주요한 이야기는 미키 7이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그리고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며 변하는 데 있다. 만약 미키7이 7이 아닌 최초의 미키였다면 갈등이나 문제는 좀 더 쉽게 해결됐을 것 같지만 미키 7은 최초의 미키가 아닌 일곱 번째 미키다.
미키7은 그간 자신이 불멸의 존재이자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키부터 미키 6까지 모두 다 자기 자신이라고 여겼다. 근데 근래 그 생각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덩달아 이상한 꿈까지 꾸게 되면서 찝찝함 때문에 업로드 일자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 와중에 마지막 업로드 때의 미키 8이 탄생한 것이다. 미키 7은 미키 8과 조우하면서 그가 자신임에도 뭔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 동시에 동료인 캣의 "네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해"라는 물음이 미키 7의 갈등에 불을 지핀다. 캣의 "네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해?"라는 물음은 다시 태어나더라도 온전히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본인이 맞냐는 질문이다. 과거 미키에서 미키 6까지의 미키였다면 "당연하지"라고 대답했겠지만 미키 7은 조금 다르다. 이때 미키 7은 굉장히 모호한 답변을 한다. 미키 7은 미키 8과 관계하고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그동안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미키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제서야 느낄까?
첫 번째 이유는 정말 미키7과 미키 8이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0.001초의 오차도 없이 미키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업로드했다면 미키 7과 미키 8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겠지만 둘 사이에는 며칠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동안의 미키들도 죽기 전 몇 시간 전에 자신을 업로드했을 뿐 업로드 이후 죽기까지의 미키는 그 다음 미키가 알지 못한다. 인간은 매 순간 변화한다. 단 몇 분의 차이로도 우린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 몇 시간. 며칠의 차이가 발생한다면 아무리 같은 기억을 가지고 같은 모습을 했더라도 우린 다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고로 미키 7과 8은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속에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를 통해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착각일 뿐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본다.미키 7은 그동안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불멸의 존재이자 그 자체라고 여겼다. 그런데 며칠의 간극으로 정말 다른 자기 자신인 미키 8 관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미키7과 8은 사람들에게 중복인 것을 들키고 만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미키 7과 8은 완전히 처분되거나 한 미키는 죽어야 마땅하지만 개척단에게는 개척지에서 위협이 되는 토착생물인 크리퍼라는 존재가 있었다. 작중 갈등은 익스펜더블인 미키와 사람들의 갈등도 있겠지만 토착생물과 개척단 간의 갈등도 존재한다. 개척단이 니플하임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계속 탐사활동을 하고 정착에 실패하는 이유가 토착생물인 크리퍼와의 다툼 때문이다. 개척지 초반부터 크리퍼들은 개척단의 사람을 계속 공격해 왔다. 개척단에게 크리퍼들은 정착하는데 위협이 되는 가장 큰 요소였다. 미키의 중복 문제를 거슬러 오르다 사령관 마샬은 미키 7을 통해 크리퍼의 소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미키들을 처분하는 대신 크리퍼들을 몰살시키는데 미키를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미키7과 8은 어차피 죽게 될 운명이고 원래 자신의 직무(익스펜더블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폭탄을 가지고 크리퍼의 소굴로 간다. 소설 초반 부분 미키 7은 크리퍼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아난 점을 미키 8에게 말하며 그들을 헤치지 말자고 미키 8을 설득해 보지만 미키 8은 이를 무시하고 없애자고 미키 7에게 말한다. 그러던 중 크리퍼의 소굴에서 미키 8이 크리퍼들에 의해 죽고 미키 7은 초반 부분 자신을 구해주었던 거대 크리퍼와 다시 조우한다. 거대 크리퍼는 미키 7에게 그동안 계속 시도했던 질문을 던진다.
"네가 본질이야?"
후에 알게 되는데 크리퍼는 굉장히 많은 숫자의 생물체 보이지만 본체가 따로 있는 공동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였다. 공동 지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미키와 크리퍼는 유사성을 보인다. 이 유사성 때문에 크리퍼는 미키 7을 본질. 즉 본체라 생각해 헤치지 않았고 미키 8을 비롯한 개척단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작은 크리퍼와 마찬가지인 부속물 정도로 생각해 정보교환의 의미로 헤쳤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헤치는 정보 수집을 한 끝에 비로소 미키의 언어를 이해했고 그제야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미키는 크리퍼와의 소통 끝에 두 집단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다. 작중의 역사 중 인류가 개척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방법을 다시 쓴 것이다. 그 방법은 서로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침범하지 않고 서로에게 무관심한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것. 즉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뫼르소가 한 적게 말하는 것과 같은 따뜻한 무관심을 통해 이들은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야기의 끝은 이제 더 이상 죽음과 태어남의 반복을 포기한 미키의 결정으로 끝이 난다. 미키는 이제 더 이상 삶과 죽음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정체성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동시에 익스펜더블이라는 존재로 사람과 섞이지 못하고 배척받으면서도 동시에 자신도 누군가를 배척하고 개척하려 했던 개척단이라는 점에서 역사에 반복되는 차별과 갈등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시대가 변하면서 문학은 굉장히 다양한 장르로 변주한다. 시간이 흐르며 변주는 계속되지만 결국 문학이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이라는 것을 연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애드워드 애슈턴 - 미키7 ★★★☆
나누고 싶은 것들
1. 테세우스의 배
2.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
3. 애벌레 꿈
4. 자원과 이민자.
5. 정체성
6. 영혼의 신성성
7. 불멸의 믿음
'책 리뷰 & 해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 콜슨화이트.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
#5 개인주의자선언 - 문유석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4. 그 겨울의 일주일 - 메이브 빈치.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3.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1. 토니와 수잔 - 오스틴 라이트 (영화 녹터널애니멀스 원작소설) 서평 및 해석 (0) | 202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