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캐릭터의 체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게서 체온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캐릭터의 특징이 너무 강렬해 그 여운이 깊게 남아 느끼는 경우 등이 있다. 아일랜드 작가인 메이브 빈치의 ' 그 겨울의 일주일'은 전자다. 작가는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쩌다 보니 호텔을 만들게 되는 치키.
우연찮은 기회로 호텔에서 일하게 된 리거와 올라.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지고 우연한 기회로 혹은 계획적으로 호텔에 머물게 된 손님들인 위니와 릴리언, 존, 헨리와 니콜라, 안데르스, 월 부부, 넬 하우, 프리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거나 혹은 "이런 사람은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수 있지" 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영감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곤 합니다. 그 사람들의 얼굴에 쓰인 이야기들을 보곤 해요. 저 사람에게는 어떠한 비밀이 있는지. 저 사람은 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지. 따분하고 평범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누구의 삶도 평범하지 않아요."
-메이브 빈치 인터뷰 中-
(의역이 있음)
메이브 빈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주변에서 찾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나, 내 친구 혹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사람들) 하지만 개개인으로 보았을 때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써냄으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고 공감하기 쉽게 만들었다. 소설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작가의 나이답지 않게 빠른 전개로 써내려가 461 페이지나 되는 책의 분량이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보통 전개가 빠르면 묘사가 조금 약하기 마련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심한 작가의 표현력도 있겠지만 고령의 작가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경험이 소설 전반에 잘 그려져 있다.
메이브 빈치는 외신 인터뷰에서 아일랜드의 변화(도시와 농촌 간, 아일랜드의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등)와 어릴 적 이스라엘 여행에서의 일(여행자로서의 삶, 오렌지 따기 알바, 닭 알 수집 알바 등등)들이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고 답하였는데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이 책을 다시 보니 작가의 배경이 소설에 미친 영향을 발견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어요. 1950년대에 더블린 살 때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한 적이 있어요"
-메이브 빈치 인터뷰 中-
[약 스포]
각 챕터의 제목은 등장인물의 이름이자 그 챕터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챕터마다 등장인물들을 차례로 등장시켜 호텔의 탄생과 완성 그리고 호텔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호텔이 처음 생겨나게 된 계기는 처음 등장하는 치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고, 호텔의 완성은 리거와 올라의 이야기로 알 수 있다. 치키와 리거, 올가가 호텔 안의 사람들이라면 호텔 밖의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호텔에서 풀어간다
첫 손님인 위니 챕터에서는 주변 배경묘사에서 나머지 손님들의 모습을 조금씩 그리고 아주 가볍고 희미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위니 다음으로 존 그리고 헨리와 니콜라의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챕터의 메인 캐릭터 외의 앞서 소개된 손님들은 좀 더 상세히 표현된다. 마치 TV나 영화 속에서 많이 나오는 기법처럼 머릿속에서 커다란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진에 까만색으로 되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이야기가 지날수록 하나둘씩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이러한 느낌조차 작가가 극작가이자 TV 연출자였던 경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이 모든 옴니버스 이야기를 한 가지로 묶는다면 갈등 혹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 때문에 출판사나 매스컴들은 치유가 되는 소설로 이 책을 많이 소개한다. 이로 인해 쉽이 '모든 등장인물이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모든 갈등을 풀고 치유하는 내용이구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러한 이야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작가는 호텔 스톤하우스를 사람들 간에 부대끼며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장소로 만든 것 같지 않다. 이야기의 끝으로 가면 누구는 치유받긴 하지만 누군가는 그대로 흘러가고, 누군가는 여운을 남기고 끝이 난다. 상처가 치유되든 치유되지 않든 미래에 치유될까? 든 호텔 스톤하우스는 그냥 종결이 되는 장소일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와 사건, 상황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언젠가는 끝나가게 되는데, 이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하나의 장소가 호텔 스톤하우스이다. 치유가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한 장소이지 상처와 갈등의 치유의 목적지가 아니다. 때문에 내게 호텔 스톤하우스라는 장소나 이야기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책에서 확 와 닿는 문장은 없었다. 메이브 빈치는 문장으로 말하는 작가가 아니라 스토리로 이야기로 말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문장보다는 이야기로 이해하고 느끼게 만든다. 가령 몇몇 등장인물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치유한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가까운 사람도 아니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오히려 우리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보다 나를 처음 만나 편견 없이 바라봐 주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얻을 때 도 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은 나의 상황, 성격,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메이브 빈치는 "가끔은 편견 없이 나를 바라봐 주는 낯선 사람이 더 큰 위로를 줄 때가 있다"라는 문장보다 그 문장을 담은 스토리로 이해하게 한다.
결국 메이브 빈치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족과 친구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큰 위로를 느끼게 됩니다.
-메이브 빈치 인터뷰 中-
우리 주변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호텔 스톤하우스라는 배경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는 소재로나 서사면에서 조금 단조롭고 평이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메이브 빈치에게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공감을 할 수 있고, 나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세밀한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 일순간에 아일랜드의 커다란 호텔의 거실 벽난로로 불러들여 옹기종기 둘러앉아 수다쟁이 할머니가 반짝거리는 눈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
미소가 아름다운 수다쟁이 메이브 빈치가 들려주는 아일랜드의 일주일에 대해.
그리고 나의 일주일에 대해
메이브 빈치 - 그 겨울의 일주일 ★★☆
1940-2012
메이브 빈치(소설가, 극작가, 칼럼니스트)
"나는 우아하고 부유한 주인공들을 그리고 싶지 않아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메이브 빈치 인터뷰 : https://jsascribes.wordpress.com/2012/07/17/author-interview-maeve-binchy/ )
나누어 보고 싶은 것.
1. 아일랜드의 문화와 정서는 한국과 닮아 있는 점이 많다. 아일랜드와 한국의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
2.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3. 정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 경험에 대해.
4. 카페나 밖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이야기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5. 나를 치유하게 만든 것에 대해
6. 좋아하는 작가와 그 작가에 대해
7. 좋아하는 계절과 장소에 대해
8. 의도하지 않았는데 풀리게 된 사건 혹은 갈등에 대해
[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그거였군요. 궁금했거든요." 치키는 캐묻지 않고 알아낸 것이 즐거운 것 같았다. "아니요. 의도한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게 풀렸어요" " 여기서는 다 그런 식으로 풀려 가지요. 그런 경우를 여러 차례 봤어요. 바다 공기 속에 떠 있는 뭔가 때문인 것 같아요."]라는 구절을 읽고.
9. 주변 사람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속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지.
2018.10.19 - 작성
2022.08.03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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