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설만 읽어요?"
간혹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도 읽을 때가 있지만 내가 읽는 대부분은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왜 소설만 읽는지 물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 재밌어서요"라고 답한다.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도 않고 재밌어서 보는 게 맞기도 해서 그렇게 답한다. 그래도 굳이 왜 소설만 읽을까라 고민하면 나도 몰랐던 나 혹은 뜻하지 않은 무언가 를 얻어서라고 생각한다. 과학책이라면 과학 관련 지식을. 위로의 에세이라면 위로를. 인문학 서적이라면 인문학적 지식을 준다. 그러나 소설은 좀 다르다. 무언가 얻으려고 하기보단 소설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우연찮게 무언가를 느끼거나 얻는다. 목적이 없이 떠난 여행에서 무언가 느낀 점이랄까.
오스틴 라이트의 장편소설 "토니와 수잔"은 이런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수잔은 전남편 에드워드로부터 본인이 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책을 받는다. 에드워드는 이 책을 보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알려달라며 후에 수잔이 있는 곳에 출장을 가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해달라고 수잔에게 말한다. 책은 수잔의 이야기와 책 속의 책 '녹터널 애니멀스'가 갈마들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수학교수인 토니의 이야기로 토니는 아내와 딸과 같이 여름휴가를 즐기러 가던 길 불청객을 마주한다. 평생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서 어떤 폭력적인 행위도 겪어 보지 못했던 토니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불청객에게 아내와 딸이 끌려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후 응당 아내와 딸은 강간 살해되어 시체로 발견된다. 갑작스러운 비극적 인일이 있은 후에도 토니는 범인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비겁한 행동만 일삼는다. 성욕에 유혹되거나 끼니를 걱정하거나 괜히 자기보다 약한 어린애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안데스라는 형사에게 연락을 받고 토니는 범인을 잡고 가족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안데스의 지시로 움직이던 토니는 범인을 잡아 복수를 하지만 눈이 멀어버리는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다.
수잔은 전 남편의 원고(녹터널 에니멀스)를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을 느낀다. '왜 나한테 보냈을까..' 그러면서도 잘 쓴 소설을 보고 에드워드를 응원하기도 하고 또다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수잔은 에드워드와 만남부터 결혼, 이별 그리고 새 남편인 아놀드와의 만남까지를 떠올린다. 수잔은 과거 에드워드에게 글쓰기 재능이 없다고 비난하고 아놀드와 바람이 나 이혼을 했다. 아놀드와 재혼을 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잔은 요즘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 아놀드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고 자신은 예전 꿈을 다 버린 채 주부로써의 삶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원고로 예전 자신의 잘못과 현재의 불안함을 우연찮게 마주한다.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원고를 보낸 까닭은 수잔이 그런 점을 느끼라며 복수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것 봐 나 이렇게 소설 잘 썼지? 그리고 네가 예전에 한 행동 너 잘못이야 알지?" 에드워드는 소설로 수잔에게 말하는 것이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토니는 경찰을 만나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 계속해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데, 아내와 딸의 강간 살해를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독자로써도 수잔으로써도 보기 거북했다. 거북한 이야기임에도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쓴 것은 마치 수잔에게 "네가 바람났던걸 생각해. 너 잘못을 생각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의 지질함이 보이기도 하고 얼마나 복수를 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치밀하게 소설을 썼을까 싶어 상처가 컸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읽은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려고 생각했지만 결국 에드워드를 만나지 못한다. 에드워드의 또 다른 복수가 바로 이것이다. 말을 하고 싶은 자에게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그리고 그걸 혼자 삼키게 하는 것.
수잔은 무언가 에드워드에게 말하려 하지만 말하지 못한 채로 여러 감정만 혼자 느낀다. 그러나 수잔도 녹록지는 않다. 마지막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내 의견을 알고 싶으면 답장 줘"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이 쓰려했던 말들을 찢어버린다.
소설을 읽는 것으로 수잔은 자신이 몰랐던 자신과 마주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무언가를 느낀다. 불합리한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나 과거에 에드워드와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 자신도 에드워드와 마찬가지로 책을 썼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까지. 심지어 아놀드와 이혼하고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모습까지 떠올린다. 소설책 한 권으로 수잔의 삶은 온통 뒤흔들린다. 토니와 수잔은 독자와 작가와의 관계나 책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가?부터 윤리적 문제, 문명과 폭력, 사랑, 결혼, 분노의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었다. 앞서 "왜 소설을 읽어요?"라는 질문에 "뜻하지 않은 자신과 마주하거나 우연찮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서"라는 답의 근거를 토니와 수잔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읽는 수잔이 뜻하지 않게 무언가를 알고 얻은 것 처럼 나도 내가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 조차 몰랐던 무언가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새삼 신비로웠다.
오스틴 라이트 - 토니와 수잔 ★★★★☆
'책 리뷰 & 해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 콜슨화이트.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
#5 개인주의자선언 - 문유석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4. 그 겨울의 일주일 - 메이브 빈치.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3.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
#2. 미키7 - 에드워드 애슈턴 (봉준호 감독 미키17 원작 소설 해석) 서평 및 해석 (0) | 2024.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