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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19.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서평(후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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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을 담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1980년 의문의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두 번째 소설이다. 어린 소년 모모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악동 같지만 순수한 어린 주인공 모모를 통해 이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자기의 실제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열네 살 모모의 눈을 통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을 바라본다.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꿈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 전환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소외시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버림받은 사람들, 소진되어가는 삶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가득 차서 살아간다. 그를 맡아 키워주는 창녀 출신의 유태인 로자 아줌마를 비롯해 이 소외된 사람들은 모두 소년을 일깨우는 스승들이다. 이들을 통해 모모는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동시에, 삶을 껴안고 그 안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저자
에밀 아자르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3.01.24

 

 

소설을 쓰는데 등장인물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는 굉장히 어렵고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의 작가는 비중이 없는 작은 인물일지라도 서사에 필요하다면 성별, 나이, 인종, 계급, 성격 등을 고민하며 만든다. 등장인물에 따라 소설이 주는 느낌과 흐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많은 작가들은 어린아이를 등장인물로 내세운 소설을 많이 썼다. 그런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시선이 신선하다고 느끼고 심리적 거부감도 덜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늙은 노인이나 다 큰 성인이 등장인물이라면 그 등장인물이 무어라 이야기하거나 생각할 때 사람들은 "뻔한 생각이지." 혹은 "그건 좀 아닌데?"라고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어린아이가 등장인물이라면 그 생각과 말에 사람들은 "어린애가 어떻게 저런? "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궁금해하기도 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와 비슷한게 고양이나 강아지가 주인공인 소설들이다.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너무나 많은 스토리가 있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 앞의 생'은 모모라는 아랍 아이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모모는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생계로 하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가 데리고 있는 아이 중 한 명이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모모는 부모에게 버려져 로자 아줌마 밑에서 자라며 그녀를 부모처럼 따르고 그 동네에 한데 모여 사는 하밀 할아버지, 롤라 아줌마, 카츠 선생, 은다 아메데 등등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간다. 책은 모모의 성장을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제목에  "생" 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 처럼 작가는 모모의 입을 통해 생과 관련된 가벼워 보이지만 무거운 말들을 툭툭 던진다.

 한가지 예로 개의 안락사에 관한 것이 있는데, 모모는 사람들이 개를 안락사 시켜주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개가 고통 끝에 죽는 것는 것이 안타까워 안락사를 시켜준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람이 노인이 되어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갈 때는 안타깝지 않기에 고통받으며 죽도록 안락사를 시켜주지 않는다고고 생각하며 하밀 할아버지에게 왜 그런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굉장히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한데 모모의 시선이 굉장히 신선했다. 최근 스위스에서도 한국인 2명이 원정 안락사를 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이 문제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외에도 행복,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는지, 시간, 삶, 주먹이 자라는 이유, 되감기 되는 영상 속 사람들 등등 모모의 시선에서 보니 색다르게 보이는 삶의 부분들이 많았다.

 

이 모든게 아마 모모가 어린애여서 그렇지 않을까.

 

 생에 관해 다양한 의문을 품고 그 나름의 답을 찾으며 모모는 점점 성장해간다. 반대로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는 늙어간다. 늙어가는 인간의 숙명은 뻔하다. 로자 아줌마는 노환과 여러가지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간다. 책에 구체적으로 언급 되진 않았지만 왠지 로자 아줌마 또한 로자 아줌마가 돌보는 아이들의 부모처럼 유흥업을 종사하다 생긴 성병이나 기타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 로자 아줌마가 모모를 돌보았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반대로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본다. 모모가 성장하며 로자와 티격대격했듯 로자를 돌보며 모모는 로자와 티격태격한다. 단순하게 보면 둘은 서로를 미워하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대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위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모모는 어리다. 어린 모모는 고령의 아픈 로자를 돌보느라 하루 하루 힘겹게 보내지만 단 한 번도 그녀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와중에 갑작스레 모모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찾아온다. 아버지는 로자에게 모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로자는 갖은 핑계로 거부한다. 모모에게 정신병자이자 볼품없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은 것도 있고, 그동안 정이 들은 모모를 떠나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아버지의 등장 이후 모모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모모는 소설 초반부 10살이라고 나오지만 알고보니 14살임이 밝혀지는데 이는 로자가 계속 나이를 속이고 숨긴것이었다. 로자가 모모를 10살로 숨긴 이유는 10살이면 성년이 아니기에 모모를 떠나보내지 않고 모모를 계속 돌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등장으로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나 나이를 알게된 모모는 아버지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그에게 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로자와 함께한다. 그러나 로자의 상태는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거의 죽기 직전인 상태가 된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주변 이웃들이 로자와 모모를 위해 로자를 병원으로 옮기려 하자 모모는 로자가 생을 억지로 연명하며 고통 끝에 죽는 것을 원치 않아 병원에 못 가게 막고 그녀의 곁을 계속 지킨다.

 

 

 

 

 

 결국 로자는 죽는다. 로자가 죽자 모모는 유태인 동굴이라고 부르는 지하실로 로자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모모는 로자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할까 봐 화장해주고 향수를 뿌려준다. 그리고 혹시나 그녀가 죽음을 이겨내고 깨어났을 때 어둠을 보고 두려워할까 봐 촛불을 켜고 그녀 곁을 지킨다. 모모는 죽음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14살이면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 나이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모가 죽은 로자의 곁을 계속 지킨 것은 지독한 사랑 때문이다. 그 사랑 때문에 모모는 죽은 로자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모가 언제까지 로자의 곁을 지킬 순 없다. 로자의 시체는 부패하고 냄새를 풍긴다. 이웃들은 그 냄새의 근원을 찾다 유태인 동굴을 발견하고 그 지하실 문을 부수고 로자와 모모를 꺼낸다. 이 책의 첫 구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들은 말했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말했다. 미친 사람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책의 마지막순간에서 이 책의 첫 구절의 의미가 폭발한다. 미친 사람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다. 그게 삶이고 그게 사랑이다. 자기 앞의 생의 생은 로자의 생애이자 모모의 남은 생이자 우리의 생이다.

 

 인간은 살아가고 살아간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을 미화하거나 애걸복걸할 필요는 없다. 모모에게 남은 생이 아름다울지, 참혹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모모는 생을 알고 있다. 삶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의 맛을 알 수 있다.

 

 

 

 

 

로자와 모모의 사랑은 키워줘서나 키워서 생긴 정이나 사랑이 아니다. 참혹한 삶을 살지만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서로를 아껴주며 생긴 사랑. 서로를 살아가게 만드는 사랑이다. 로자와 모모를 통해 작가는 말하고 싶다. 절망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과 결국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위안해줘야한다는 것을.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순해 빠지고 당연하지만 사람은 사람 때문에 살아간다.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라는 책에서 사람은 사람때문에 산다. 고 말했다. 모모와 로자도 사람 때문에 살았다.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지만 모모와 로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종교와 인종의 사람들이다. 서로가 매우 다름에도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위안을 주며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인종이나 종교, 사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솔직히 나는 물질만능주의를 가지고 있다. 예전 글에도 썼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인간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실현을 물질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고 그걸 믿지만 가끔은 물질만능주의에 기인한 내 행동이나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치거나 놀랄 때도 있다. 이런 책을 읽거나 현실에서 로자와 모모 같은 사람을 보거나 일화를 들을 때면..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인간. 그리고 사랑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절망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몸부림과 서로 안아 주는 사람들.

에밀 아자르 - 자기 앞의 생 ★★★

 

 

 

 

 

추가) 어찌보면 굉장히 나이브 한 휴머니즘 소설인데 전혀 억지스럽지도 신파극 같은 느낌도 들지 않는다. 가끔 어떤 소설은 등장인물의 슬픔을 가지고 독자에게 공감시키거나 독자의 눈물을 짜내기 위해 과도하게 매질하는 책들이 있다. "이래도 안울어? 이래도?" 라는 식으로 계속 독자의 종아리를 때리는 류의 책들이다.

 

'자기 앞의 생' 은 좀 다르다. 절망과 슬픈 내용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독자들이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캐릭터와 문장에 힘을 주었다. 문장은 신선하고 캐릭터는 진부하지 않으며 눈 앞에 인물들이 튀어나올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뿐 아니라 곳곳에 유머를 넣어 독자들이 감정의 휴식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나누고 싶은 것들

1.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되는가?

2. 모모와 로자의 관계

3. 작가들이 아이를 화자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4. 아이가 등장하는 다른 소설들

5. 안락사

6.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7.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여러 가지 문장들

(예: "노인네들에게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옛 추억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등등)

8. 10살과 14살의 차이. 모모의 갑작스러운 성장

9. 아이샤, 로자, 나딘

10. 카이렘 & 인샬라

11.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

12. 아르튀르(모모의 우산 친구)

13. 롤라 아줌마, 하밀 할아버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2019.03 - 작성
2022.08.22 - 1차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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