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플롯이나 구조의 모순, 번역 등을 제외하고 감상으로만 보면 각자의 감상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감상이 이러하구나라고 알아간다. 비문학은 감상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의견(지식)에 의문을 던지고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문학을 읽었을 때 해당 분야의 지식이 없는 사람은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가? 혹은 모든 이가 의문을 던지고 주장의 모순을 말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보통 비문학을 읽었을 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여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고 혹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이기에 이해하기보다는 글쎄? 그건 아닌데?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면 좋을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다양하다. 문학을 쓰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과학을 쓰는 사람이라면 인간 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모든 것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을 자유가 있으며 자신의 판단을 따를 뿐이다. 비문학이든 문학이든 무엇이든 어떠한 작품이든. 모든 작품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아 이런 관점에서는 이러는구나."라고 이해하면 된다. 세상에 알려진 인문학과 과학은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과거에 누구나 세상은 둥글지 않고 평평한 평면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귀한 성씨가 따로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고로 이 책을 통해 최근 과학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의 앞부분은 물리 학사에 대한 내용으로 과거의 인물들의 생각에서 비교적 근대의 사람들에게까지 과학 혹은 물리학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해 말한다. 후반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구 중인 고리 양자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학이라 하면 고등학교, 대학교 때 머리를 아프게 했던 암기식 과학 수업과 공식이 떠올라 책이 조금 두려웠다. 그러나 저자는 원래 문학인이 아니었을까라고 의심이 갈 정도로 매우 쉽고 단계적으로 과학사를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공식과 이론을 모르더라도 우리가 머릿속으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고대인들이 분자와 자기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을 하여 세상을 이해했듯이 우리도 실재를 놓아두고 조금 상상력을 발휘하여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보이는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있는데 실재가 아니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의문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예가 있다. 보통 우리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한다. 과거와 미래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명확하게 현재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라는 것은 미래와 과거 사이의 그 어느 중간 정도이다. "무슨 말이야?"라고 바로 말이 나올 수 있는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바로 찰나에 과거가 된다. 때문에 현재라는 것은 근사치일 뿐이지 정확히 현재라고 말할 수 없다.
보이는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세상은 실재가 아닐 수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저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학에 상상력이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야?라고 할 수 있지만 뛰어난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이 수학에는 약했지만 뛰어난 상상력으로 최고의 과학자로 거듭난 일화처럼 과학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학에서 필요로 하는 상상력이란 “이렇지 않을까?”라고 상상하고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가설 설정이다. 가설 설정이라는 점에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저자가 간결하고 이해가 쉽도록 썼지만 이 책은 확실히 머리가 아픈 책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대중에게 익숙하게 하기 위해 대중서들을 많이 쓰고 있는데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다가선 작품들은 별로 없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쉬워서다. 과학과 담을 쌓은 내가 책을 통해 물리에 대해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근사치에는 다가섰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타 다른 책들보다는 좀 더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선 작품인 것 같다.
우리는 글이나 말을 할 때 모호한 표현 혹은 나의 생각에서는..이라는 표현을 쓰면 "자신이 없어 보인다" 혹은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오히려 모호하게 쓴다. 자신이 쓴 말이. 자신이 쓴 글이 혹시나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현재 자신이 생각한 진리가 후에는 진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모호하게 쓴다고 한다. 무엇이 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든 책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며 세계의 두려움과 깊이,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이 가령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아니면 그 어떠한 이야기일지라도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뜬다는 것은 굉장히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조금은 낯설고 어렵지만 읽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책.
카를로 로벨리 ㅡ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1. 물리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2. 내가 읽은 재밌었던 과학서적은?
3. 실재란?
4. 어린 왕자에 나온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대사에 대해
5.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눈 뜨는 설렘
6.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7. 글은 명확하게 써야 할까?
8. 글쓰기에서 내가 고수하는 원칙은?
9. 내가 알고 있는 재밌는 과학이야기는?
2019 - 작성
2022.08.18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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