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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21.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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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014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저자 특유의 신비하고 몽상적 언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퇴역 탐정 '기 롤랑'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행을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기 롤랑이 자신의 바스러진 과거를 추적해가는 모험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 주제 의식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를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붕괴시켜나가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저자
파트릭 모디아노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0.05.17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이 질문은 프랑스의 논술 문제 시험인 바칼로레아의 문제 중 하나다.

시간의 흐름으로 생각하면 과거가 있어야 현재도 있는 것이니 답은 "그렇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정체성이란 타자와 나를 구별하는 독립적인 성질이며 일관되게 유지되는 성질이다.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라는 질문을 정체성으로 생각하면 지금 나의 정체성은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것인가?라고 바꿔볼 수도 있다.

과거로부터의 축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관되게 유지되며 타인과 구별되는 성질이며 동시에 그에 따른 기억을 의미한다. 기억은 정체성과 무결해보이지만 정체성을 만드는 데는 경험. 즉 기억이 있어야 하므로 완전히 다르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서로를 보충해 주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있다고 치면 지금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의 총합이 나의 정체성이라면 과거의 기억이 없는 사람의 현재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과거를 파헤쳐 가는 여정이었으나 과거를 알면 알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남자가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기 롤랑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기억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한 남자의 정체성과 실존에 관한 문제를 그렸다.

 

 주인공 기 롤랑은 탐정이다. 기 롤랑은 위트라는 탐정과 같이 일을 하다 그가 은퇴를 하자 그동안 미루어왔던 자신의 과거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바맨 부터 피아니스트, 정원사, 술집 주인, 사진가 등등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을 통해 얻은 단서들의 조각을 찾아 잃어버린 자신을 조합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기 롤랑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아닌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기 롤랑의 모습은 모두가 다 다르고 그를 정말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기 롤랑은 그들을 거치며 문득문득 접하는 매운 향수 냄새, 음악소리, 미로, 길거리 같은 매개체들에서 무언가 어렴풋한 느낌은 얻지만 여전히 안갯속에 빠진 사람처럼 모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계속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가던 기 롤랑은 기억을 잃기 전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프레디, 게이, 드니즈” 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들을 쫓아가지만 게이는 죽고 드니즈와 프레디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여정이 계속될수록 그는 어렴풋한 과거를 떠올리지만 점점 혼란스러워한다. 기 롤랑의 혼란은 과거를 찾아가며 재구성되고 있는 자신이 과연 지난 자신의 모습일지 아니면 누군가가 창조해 낸 인물의 삶에 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단순한 추리소설처럼 보이지만 모디아노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기 롤랑의 독백을 통해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과거를 잊은 개인의 삶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페드로 혹은 기 롤랑으로 불리는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남자에게 지금의 나는 과거의 총합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까? 정체성이란 무엇이고 기억이라는 것은 완벽한가? 혹시 기억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끼워 맞춰 왜곡시킨 것이고 정체성 또한 내가 새로이 창조해낸 것은 아닌가? 

 

 기 롤랑의 여정에서 실존에 대한 물음이 계속 내면에서 떠오른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를 보지 않는다면 나는 실존하는 것인가? 와 같은 기본적인 실존에 관한 물음이다. 나는 존재하는데,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심지어 나 조차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존재하는게 맞는 것인가? 참 어이없고도 어렵다.

 

 소설에는 기 롤랑의 과거를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 외에도 그를 스쳐가는 일본인, 결혼식장의 신부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기 롤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기 롤랑에게는. 그리고 기 롤랑은 그들에게 배경과 같은 사람이다. 이름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사람들.

 

 가령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 노트북을 하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커플까지. 그들 각자는 고유한 존재를 가진 소중한 존재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들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 또한 나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인지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아무 존재도 아니다.

 

 

 

 

 

 

 

 어릴 적 나는 내가 잠에 들면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멈추고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혹은 내가 먼 미래에 죽게 된다면 이 모든 연극의 막이 내리고 세상은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계속 흐른다.

 

 생각해 보니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은 후 단서를 통해 단편적인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기 롤랑이나 단편적인 과거만을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같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과거와 인생은 과연 나의 인생일까? 아니면 혹은 내가 창조한 결과물은 아닐까? 나의 정체성은 나의 기억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일까. 아니면 무엇인가.

 

희미한 형체, 어렴풋이 들었던 소리, 빠르게 전환되는 장소와 화면. 방금 잠에서 깨어나 꾸었던 꿈을 붙잡으려 애를 써보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고 번뜩 지나가는 인상만이 남았다.

 

내가 가끔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면 친구에게 하는 말이 있다. “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어디서 온 거야?” 이 모든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카페. 이 지금 순간에도 저들에게 나는. 나에게 저들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다. 갑작스럽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글자들이 춤을 춘다. 나는 누구일까? 

 

 

끊어진 대화, 단편적인 단서, 조각난 기억과 향수 이 모호한 것들을 통한 정체성과 인간 실존

파트릭 모디아노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나누고 싶은 것들.

 

1.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2. 기롤랑은 언제 기억을 잃어버린 걸까?

3. 기 롤랑과 드니즈는 왜 국경을 넘으려고 했을까?

4. 어느 일본인, 한 신부에 대해

5. 정체성

6. 기억

7. 인간 실존

8. 한 인간의 삶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9. 과거를 잊어버렸다면 현재에 충실히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10. 아무도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2019.04 - 작성

2022.08.25 -  1차 탈고

2024.04.01 - 2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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