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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17.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서평(후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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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잊혀졌던 작품이 유럽 출판계와 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5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 『스토너』의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사랑했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윌리엄 스토너. 세상의 기준에서 실패자와 다른 없는 삶을 산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발표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주목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접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를 접한 후 문학을 사랑하게 된 스토너는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영문학도의 길을 택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교수가 되지만 어느 순간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 슬프고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에서도 개인적인 불행과 사랑의 실패에 시달리면서도, 갑작스러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일생을 바친 자신의 연구처럼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한다. 자신의 일생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말이다. 언뜻 초라한 실패담에 불과해 보이는 소박한 이야기이지만 작가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의 삶을 조금 다르게 그려냈다. 특유의 집요하리만치 세밀한 서술로 이 특별할 것 없는 남자의 인생을 진실하고 강렬하게 묘사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 스토너에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다. 비록 저자가 그려낸 스토너의 삶은 쓸쓸했지만 우리는 누구나 철저히 혼자라는 인생의 진리를,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임을, 우리의 일생에 인생의 모든 빛나는 순간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바로 이것이 스토너의 삶에 귀 기울이는 이유이자 뜨거운 감동의 근원일 것이다.
저자
존 윌리엄스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15.01.02

 

 

 

 

 

 문학 작품의 가치는 독자들에 의해 그때마다 새롭게 결정된다. 시류에 따라 문학작품의 아름다운 문장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그 시대를 통괄하는 정서에 따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크게 말하자면 이렇다는 것이고 더 세부적으로나 다양하게 그 가치를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다. 내 생각에 요즘의 문학작품들은 '개인'에 가치를 두고 많이 읽히고 많이 쓴다. 이를 대변하듯 서점에 가면 쉽게 여러 분야와 사람들의 에세이들을 접할 수 있다. '꿈은 크게 가져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과 반대로 요즘은 커다란 사회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들어 개인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는 연이은 분노스럽고 비상식적인 사건이나 앞이 보이지 않은 불안정한 미래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과거보다 개인의 가치가 더 존중받고 값어치 있다고 여겨지는 풍조가 강해져서 일수도 있다.

신형철의 추천사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이 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맞닿았다고 생각한다.




 책은 특별할 것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이 책이 이토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서사일 수도 있고, 문장일 수도 있고, 구조일수 있고, 캐릭터 혹은 캐릭터간의 관계일 수 있겠지만 그 모두가 아니더라도 뭔가 이 책이 주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흔히 대작이라고 하는 것들은 생각해보면 매우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들은 아닌 것 같다. 나중에라도 문학에 대해 큰 줄거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책의 첫 장이 전체 줄거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스토너라는 사람이 있었고 이 사람은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농업을 전공으로 하였지만 스토너는 영문학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고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다. 그 이후로 스토너는 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그곳에서 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지만 두 명의 친구를 만나고 첫 번째 전쟁을 겪는다. 모두가 대의를 외치며 그 전쟁에 참여하지만 스토너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대학에 남는다. 대학에 남아 학문을 계속 다진 스토너는 학위를 받지만 주위에서는 그런 스토너를 곱게만은 바라보지 않는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두 친구 중 한 명은 죽게 되고 한 친구만 돌아온다. 스토너는 본인이 다니던 대학에서 작은 강의를 맡게 된다. 그러던 중 스토너는 친구의 권유로 도저히 빠질 수 없는 파티 자리에 가게 된다. 거기서 이디스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스토너가 이디스를 만나 첫눈에 반하기까지의 문장은 매우 걸작이다. 보통 머릿속에 그려질 듯한 서사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스토너에서는 그런 문장이 많이 많았다.


 스토너는 이후 이디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이디스는 부모님의 허락으로 스토너와 결혼을 한다. 스토너가 소설 속에서 직접 이야기도 하지만 둘의 사랑은 성공적이지 못한다. 둘은 서로를 최대한 견디며 살아갈 뿐이고 둘은 진심으로 교감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 둘은 저항하는 용기가 없어 견디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다 둘 사이에 그레이스라는 딸이 태어나 뭔가 변곡점이 생길 여지가 만들어지고 스토너는 딸에게 온전히 사랑을 쏟아내지만 그마저도 이디스의 방해로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다.


 처음 이성적으로 이디스에게 끌려 청혼했을 때를 빼고 이후 스토너는 사랑에 있어서도,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액션은 없고 리액션만 있는 수동적인 사람의 모습을 보인다. 그가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하는 것은 학문뿐이다. 학문에 있어서 만큼은 남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던 스토너에게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동료 교수인 로맥스의 애제자인 워커와 관련된 사건인데 스토너가 보기에 워커는 자격이 충분치 않아 그에게 낙제 점수를 준다. 로맥스는 자기 애제자의 성공을 막는 스토너에게 반기를 들어 갈등을 빚게 된다. 여기서 로맥스와 워커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신체적으로 약간의 불편을 가지고 있다고 나오는데 이 부분이 나에게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은 약간의 히스테릭함을 가지고 있다'라는 전제를 깔아 두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어쨌든 동료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학생 한 명쯤 눈감아 줄 수 있을 법한데 스토너는 눈감아주지 않고 아주 단호한 태도를 가진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담론과 가치에는 맞서지 못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수동적인 인간이지만 스토너는 학문이라는 개인적인 가치에 있어 능동적인 인간이다. 여기서 누군가 '그까짓 거 그냥 한번 눈 감으면 되잖아. 그걸 못 참아?'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작아 보이는 가치가 스토너에게는 정말 포기할 수 없이 거대한 가치다. 책의 중간중간 스토너가 무언가 열정에 차거나 활기차게 보내는 때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스토너는 학문이 잘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학문은 스토너에게 전부라 할 수 있다. 스토너는 개인의 가치 혹은 정의 때문에 승진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평범한 조교수로 대학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스토너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캐서린'이라는 여자다. 둘의 사랑이 불륜이기는 하지만 스토너가 캐서린에게 반하고 둘의 사랑이 성공한 이유는 문학 때문이라고 본다. 캐서린은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문학을 가지고 스토너와 충분히 교감을 하였다. 그녀의 학문이 스토너에게는 동료애이자 사랑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 이디스와의 사랑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디스와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이디스에게 학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학문에 있어서는 남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학문을 제외한 사랑은 생각할 수 없다.

 

 비록 캐서린과도 이디스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실패하지만 둘의 사랑에는 차이가 있다. 그걸 보여주는 것이 바로 눈이다. 스토너는 처음 이디스의 눈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보았지만 그 이후로 스토너는 이디스의 눈을 보지 않는다. 반면 스토너는 처음부터 중간, 끝까지 캐서린의 눈은 꾸준히 바라본다. 그러기에 그가 본 그녀의 눈이 사실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눈이 아님을 발견한다.  처음 캐서린을 봤을 때 그녀의 눈이 갈색이나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자세히 보니 보라색임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 상대방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때문에 간혹 "그렇게 나랑 오래 만났으면서 아직도 몰라?"라는 말이 연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는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았다는 종착점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는 출발점이다. 

 

 둘의 사랑은 당연히 실패로 끝나고 이후 스토너는 점점 병약해져 간다. 이디스와의 결혼생활은 여전히 좋지 않고, 그레이스와는 이미 멀어졌다. 친한 동료나 친한 친구도 딱히 없을뿐더러 학과 생활은 로맥스 때문에 계속 힘들다. 그렇게 견디며 살다가 죽는다. 스토너가 죽어가는 장면은 마치 정말 죽어가는 사람이 겪은 것을 실시간으로 적은 것처럼 매우 선명하다. 스토너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리고 죽는다. 요즘 사이다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원하는 시원한 복수나 권선징악 같은 장면이 스토너에는 없다. 

 

 그는 관계에 있어서, 불합리함에 있어서, 모든 것에 있어서 견디는 사람이다. 액션은 없고 리액션만 있을 뿐이고 큰 동요 따위는 전혀 없다. 스토너의 일생은 누가 보기에는 천천히 사그라들어가는 성냥불과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스토너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적어도 나에게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책의 첫 부분에 이 책의 모든 부분이  적혀있었다.

 

그 감동이 뭘까 잠시 고민했는데, 정의 혹은 가치인 것 같다.  연초 나는 나의 대의(정의)를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줄곧 했다. 이유는 좀 단순한데 드라마를 보다 이방원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그 누가 뭐라해도 자신이 믿고 진리라고 생각하는 정의가 멋있어보여서다. 이방원과 스토너를 같이 보기에 둘은 극명하게 다른 사람이지만 정의라는 면에서 가치라는 면에서 보면 둘은 비슷한 인물이다.


사회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

개인의 정의와 인류의 정의.

소네트. 다섯 개의 기둥.

19살에 대학에 들어가 65세 정년일 때 죽은 스토너.

대학이라는 장소.


이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일 듯하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눈앞을 가렸다.



그래서 "넌 무엇을 기대했나?"
감상은 안개와 같고 떠오르는 생각은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존 윌리엄스 - 스토너 ★★★★





나누고 싶은 것들.

1. 사회적 가치와 개인의 가치 혹은 큰 정의와 작은 정의
2. 사랑이란.
3. 소네트가 의미하는 것.
4. 다섯 개의 기둥
5. 이디스
6. 그레이스
7. 스토너의 두 친구
8. 캐서린
9. 아서
10. 스토너의 일생
11. 스토너에 나오는 문장들
12. 이 밖에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에 대해.

2019- 작성
2022.08.19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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