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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66. 하얼빈 - 김훈. 서평(리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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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 ‘작가들의 작가’로 일컬어지는 소설가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이 출간되었다. 『하얼빈』은 김훈이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인생 과업으로 삼아왔던 특별한 작품이다. 작가는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소설로 쓰려는 구상을 품고 있었고, 안중근의 움직임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글로 감당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인간 안중근’을 깊이 이해해나갔다. 그리고 2022년 여름, 치열하고 절박한 집필 끝에 드디어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하얼빈』에서는 단순하게 요약되기 쉬운 실존 인물의 삶을 역사적 기록보다도 철저한 상상으로 탄탄하게 재구성하는 김훈의 글쓰기 방식이 빛을 발한다. 이러한 서사는 자연스럽게 김훈의 대표작 『칼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데, 『칼의 노래』가 명장으로서 이룩한 업적에 가려졌던 이순신의 요동하는 내면을 묘사했다면 『하얼빈』은 안중근에게 드리워져 있던 영웅의 그늘을 걷어내고 그의 가장 뜨겁고 혼란스러웠을 시간을 현재에 되살려놓는다. 난세를 헤쳐가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 미약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김훈의 시선은 『하얼빈』에서 더욱 깊이 있고 오묘한 장면들을 직조해낸다. 소설 안에서 이토 히로부미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의 물결과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청년기의 순수한 열정이 부딪치고, 살인이라는 중죄에 임하는 한 인간의 대의와 윤리가 부딪치며, 안중근이 천주교인으로서 지닌 신앙심과 속세의 인간으로서 지닌 증오심이 부딪친다. 이토록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갈등을 날렵하게 다뤄내며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야의 차원을 높이는 이 작품은 김훈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소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저자
김훈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08.03

 

 

 

 별 것 아닌 단어와 단어가 서로를 이끌고 압축된 의미를 전달하고 서사를 리드미컬하게 끌고 나간다. 김훈의 소설을 읽다보면 역시 소설가란 아니 좋은 문장을 쓰는 소설가란 분명 재능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가지고 이렇게 유려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얼빈은 소설이지만 소설과 역사와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건 최근 많이 나오는 역사소설의 양상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역사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의 인물이나 이야기를 추가하는 형태로 쓰였다면, 김훈의 하얼빈과 같은 역사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역사에서 놓친 부분. 대화나 인물의 생각 같은 것들을 작가의 역사관에 따라 상상에 의해 추가되어 쓰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구와 고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이되 인물의 감정이나 말에 대한 상상이 지나지게 많아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소설의 특성상 허구의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나치게 많아진다면 역사 소설을 벗어난 판타지가 되어 버린다. 김훈의 하얼빈은 역사의 연구와 고증을 기반으로 소설적 재구성이 용납되지 않는 부분은 도려내거나 철저하게 역사에 따르며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 그 당시 하얼빈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청년. 그리고 이토를 쏠 수밖에 없었던 청년의 어떤 순수성에 대한 것을 그렸다.

 

 

 

 안중근의 대의와 그의 위대함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의 서사와 영웅성은 이미 많은 곳에서 말하고 있다. 소설 하얼빈이 주목하는 것은 안중근의 행동성이나 영웅적인 면모가 아니다. 책은 안중근이라는 개인의 고뇌와 순수성에 대해 말한다. 안중근이 가졌을 고뇌와 순수성은 인간의 선함과 세계의 악, 종교와 절망감, 인간이 인간을 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같은 것에 기인한다.

 소설의 초반을 보면 안중근의 종교, 인간의 선함에 대한 순수성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안중근이 연해주 연추에서 참모중장으로 있을 때 전투로 잡은 일본인 포로들을 처리하는 문제에서 이들을 풀어준 사건이다. 그로 인해 안중근은 곤경에 처하고 추종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지만 안중근은 이 일을 후회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안중근은 자신의 대의를 오로지 살로만 이루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대의는 더 큰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 일로 몸의 운신이 힘들어져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가던 중 안중근은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다. 안중근은 이토의 사진을 보자마자 몸과 마음이 그를 죽여야 한다는 쪽으로 이끎을 느낀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부터 하얼빈에 도착할 때까지 안중근은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고심하고 고심하다 결국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쏴 죽인다.

 

 안중근의 총구가 흔들린 것은 총을 든 것도 인간이고 안중근의 총구에 놓인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하는데 아무리 대의가 있더라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자신을 다잡고 또 다 잡는다. 그가 쏘려는 것은 이토라는 인간이 아닌 이토로 파생되는 일본의 악이기 때문이다.

 반면 빌렘과 뮈텔 주교는 종교인으로써 일본의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죄에 대한 증오의 발현이 사람을 해하는 것으로 발전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뮈텔 주교는 종교적인 이유와 여러 정치적 이유로 안중근을 외면했고 빌렘은 스승이자 세례명을 준 사람으로서 안중근을 설득하기 위해 안중근에게 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람을 해한 것은 죄이며 이를 뉘우치고 속죄하라 말한다. 안중근은 이에 대한 답으로 이토라는 사람을 해한 것은 죄일 수 있지만, 이토로 인해 작용되는 것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만약 본인이 이토를 죽인 일을 늬우친다면 그건 이토를 죽이는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즉 안중근은 이토라는 한 인물에게도 물론 적개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토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세계의 악. 일본의 악에 대한 증오와 메시지를 위해 이토를 죽인 것이다. 안중근의 총은 '말'이었다. 만약 이토의 자리에 이토라는 사람이 아닌 모아무개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안중근의 총과 말은 그에게 향했을 것이다.

 

 총은 안중근의 말이었고 말은 총처럼 강과 약의 대립으로 구성되는 부조리와 폭력, 야만성에 발사되었다. 안중근의 역사는 과거이지만 왠지모르게 그의 말은 아직도 세상에 발사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칼의 노래부터 하얼빈까지 역사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다는 건 진짜 보통 내공이 아닌 것 같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또 생각났다. "글이 간결하고 거짓 없이 진실되다면 그것이야 말로 훌륭한 소설이다." 

 

하얼빈은 진실되고 간결하며 맛이 있었다.

김훈 - 하얼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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