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내가 친구에게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행이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때에 느껴지는 이 이상한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한 작가가 있다면 바로 그 책을 살 거야.'
이 책이 그에 부합하는 책은 아닐지라도 김영하의 언어가 나의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보는데 영감을 주었다.
여행의 이유를 따지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여행의 이유는 순간을 살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항상 현실을 살지 못한다. 과거 미래 그 어느 언저리에 산다. 지금도 어제 했던 나의 행동을 생각하고 1년 전의 일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미래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예측하고 고민한다. 오늘 저녁에는 무얼 먹을지 내일은 무얼 할지 고민한다. 순간을 살아가지만 나 자체는 과거와 미래 그 언저리를 계속 맴도는 것이다.
일상에는 상처에 대한 생각, 과거의 상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들 같은 것들 있다. 그것들로 나는 옆을 보지 못하고 앞과 뒤만 본다. 그런데 여행은 조금 다르다. 여행지가 주는 낯선 상황과 사람, 사물들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와 미래는 없다. 낯선 상황과 낯선 사람, 낯선 풍경 속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이 모든 것을 습득하며 비로소 나는 늑대의 삶을 살게 된다.(철학자와 늑대_마크 롤랜즈)
어떤 예술가가 원작이 주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보던 예술작품이나 건축물, 자연경관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던 것과는 다른 어떤 감동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이 또한 여행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작품을 인터넷이나 책등으로 보게 되면 나의 시선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을 보기에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내가 주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주체가 되어 본 형태를 그대로 내가 다시 보기 때문이다.
1년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 피렌체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조각상을 보았다. 그때 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나뭇조각 상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느낌을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데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낀 것이다. 만약 내가 순간을 살아가지 않고 평소같은 일상이었다면 같은 감동을 느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그 어떤 예술가가 이야기한 원작이 주는 감동이란 오롯이 내가 주체가 되어 집중해서 볼 때 오는 감동이 아닐까.
그동안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은 여행을 다녔다. 여행의 이유나 여행에 대해 깊게 고찰하려 노력을 많이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나의 언어로 여행을 떠올리려니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영하 또한 여행에서 영감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나의 여행만으로는 여행에 대한 영감을 얻기 힘들었다. 나의 여행에서 다른 사람의 '언어'가 더해졌을 때 무언가 극화되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봤다. 여행이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때의 그 이상한 기분. 바로 그 기분은 순간을 살다 이제 다시 과거와 미래의 언저리로 돌아가려는 때에 시간여행자가 느끼는 멀미일 것이다. 이제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에서 과거와 미래의 언저리를 왔다 갔다 흔들리기 때문에 그때 오는 멀미가 묘한 기분을 불러오는 것이다.
여행을 생각하니 많은 잔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도 나는 과거와 미래의 언저리에 살고 있다. 언젠가 또다시 여러 가지의 이유로 순간을 살라고 늑대의 삶을 살라고 무언가 내 등을 떠밀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나는 또다시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 여행을 하며 멀미를 반복할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에서의 뒷맛을 느끼고 싶다면
김영하 - 여행의 이유★★
2019.06 - 작성
2022.09.02 - 1차 탈고
2024.04.01 - 2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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