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화나 만화를 보면 주인공은 운명이나 시대, 상황이 이끄는 동력(사명감 같은)에 따라 여정을 떠나기도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여정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보통 주인공은 여정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이전과 다른 상태( 깨달음, 성장)가 된다. 인간이 꼭 여행을 떠나고 험난한 상황을 겪어야만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환경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하는데 꽤 많은 도움을 준다.
애플 TV에서 공개한 "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은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과 인사이트로 주인공이 성장한다는 플롯을 아주 정직하게 지킨 영화다. 스토리만 보면 굉장히 진부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최대의 매력은 주인공(치키)이 여정을 떠나는 계기와 주인공이 해내려는 임무(?)에 있다.
[스포주의]
영화의 배경은 베트남 전쟁시기로 미국 정부는 더 많은 병사를 차출해 북베트남을 막아서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당하고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미국에 남은 사람들은 전쟁 반대 시위를 격하게 하는 상황이다. 주인공인 치키는 매일 허송세월을 보내는 인물로 전쟁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여동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치키의 입장은 이렇다. "우리를 위해 싸워주는 군인들을 응원해야지. 전쟁 반대 시위를 하고 그들을 살인자로 몰면 애국이 아니지 않냐. 우리는 그들을 응원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에 나갈 용기도 부족하고 별 뜻도 없는 치키는 똑같이 술을 마시고 점심 느지막이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던 중 치키는 자신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전사했다는 소식과 절친 토미가 생사불명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럼에도 평소처럼 똑같이 술집에서 술에 취해 맥주를 마시던 치키는 친구와 술집 주인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김에 호승심이 나와 "전쟁에 나간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해 고향의 맥주를 전달하러 가겠다."는 선언을 한다.
당연히 다음날 맨 정신이 된 치키는 술에 취해 한 말이지 갈 생각은 전혀 없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근데 이미 주변의 기대는 높아졌고,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 보낸 부모들은 치키에게 자식의 안부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보통 주인공들은 여기에 흔들리지만 치키는 흔들리지 않는다. 치키를 흔든 건 부모와 친구들의 비아냥이다. "너 갈 배짱도 없잖아. 그냥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똑같이 술이나 마셔" 치키는 이런 말을 듣고 "내가 왜 못가. 갈 건데?" 라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킥을 한 건 절친 토미의 어머니의 방문이다.
결국 토미는 허세로 전쟁에 나간 친구들에게 맥주를 배달한다는 엉뚱한 임무를 가지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보통 전쟁터에 가면 군인이 아닌 이상 민간인이 여러 지역을 돌아볼 수 없다. 그런걸 잘 모르는 치키는 천진난만하게도 만나는 군인들에게 맥주 배달하러 왔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데 군인들은 그런 치키를 이상한 사람이 아닌 비밀임무를 가지고 온 CIA 요원으로 착각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한다. 보통 민간인이라면 갈 수 없는 깊숙한 전쟁터까지. 치키는 엉뚱함으로 무장하고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 치키는 친구와 전쟁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점차 성장하고 생각의 변화를 맞게 된다.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당연히 주인공인 치키는 여정 끝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범죄 혹은 참혹함 속에서 개인이 받는 피해와 허무, 치유에 관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치키가 가볍게 건네는 "맥주 하나 받아"라는 말은 참혹한 전쟁 속에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작은 위로나 응원을 보내고 싶은 손길이다. 그 손길로 사람들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치키 자신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엉뚱한 치키의 행동과 생각. 치키를 CIA로 착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드라마 장르에서 코미디 장르로 변모시켜준다. 그리고 이런 코미디 장치는 전쟁 영화를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쟁 영화고 전쟁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그러기에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는가?"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담은 장면과 치키의 생각이 변화게 되는 순간의 장면들이 너무 평범하고 누가 봐도 " 자 여기 이제 주목하세요"라는 느낌으로 날 것 그 자체로 드러나 있다. 또, 이 영화에서 토미와 토미 어머니는 영화의 분위기를 바꾸고 치키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비중이 부족하고 어설픈 플래시백으로 조명한다. 전쟁영화를 가볍게 만들고 드라마에 코미디를 적절히 잘 섞었다는 점에서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은 칭찬할 만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조악하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의 핵심 아이템인 맥주처럼 가볍게 즐기기에 너무 좋은 영화다.
가볍고 즐겁게 즐기고 싶은 맥주처럼 맛있고 재밌는 영화.
추가) 그리고 놀라운 건 이 영화는 실화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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