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학의 거장. 폴 오스터 별세. 그의 생애, 인터뷰 | 달의 궁전, 4 3 2 1, 뉴욕 3부작, 빵굽는 타자기 등.
by 까망북클럽2024.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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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가 별세했다.
77세면 아직 젊디 젊은 나이인데, 폐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폴 오스터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로 유명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얘기하면 하루키도 빼놓을 수 없는데, 폴 오스터 또한 책 집필에 들어가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주스를 한 잔 마시고 신문을 읽은 뒤 작업실에 가 잠들기 전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심지어 집필 중이라면 주말에도 가족 행사나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이상 글쓰기를 계속했다고 한다.
또, 폴 오스터는 컴퓨터가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서도 모눈종이 공책에 글을 쓰고 탈고의 탈고를 반복하다 최종 본을 타자기에 쳐 원고를 정리하기로도 유명했다. 예전 인터뷰에서 그렇게 펜과 타자기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몸에서 나오는 말들을 적는 일이기 때문에 한 땀 한 땀 종이에 새겨 넣는 육체노동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폴 오스터의 책을 읽으면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만든 옷을 입는 것처럼 짜임새가 쫀쫀하다.
폴 오스터의 말 처럼 글 쓰기가 머리에서 나오는지 몸에서 나오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글의 내용은 머리에서 나올지언정 글을 쓰려는 행위 자체는 몸에서 나오는 게 맞다. 요즘처럼 짧은 영상 콘텐츠가 득세하는 시대에서 폴 오스터처럼 글을 쓰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 심지어 긴 글을 쓰는 건 더더욱 비효율적이다. 돈을 위해서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든 뭐든지 간에 요즘은 영상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고 말을 하는 게 훨씬 잘 먹히는 사회다. 만약 무조건 글을 써야 하겠다 하더라도 짧게 쓰는 게 요즘 대중에게 어필되는 사회다.
그런데도 폴 오스터 처럼 계속해서 글을 쓰고. 누가 읽을까? 싶은 긴 글을 쓰는 사람들이 꼭 있다.
만약 글쓰기가 머리에서 나오는 거라면 그들은 바보지만 그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몸에서 나온다는 것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기 위한 행위라는 말이다. 눈을 떠서 사물을 보고 어딘가를 걷거나 달리고 싶고 높은 곳을 보면 올라가고 싶은 것. 생존을 위해 하는 것을 제외한 인간의 모든 육체의 행위는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많은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글을 왜 쓰시나요?" 라는 인터뷰어에 질문에 "그냥요"라고 대답하는 작가들이 많다. 폴 오스터 또한 인터뷰어가 "왜 글을 쓰시나요?"라고 물었을 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 보다 글을 쓸 때가 행복해요"라고 답했다.
글 쓰기란 그런 것 같다. 몸에서 나오는 것.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하는 행위로 나온 결과물.
글이 바로 그런 결과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한 사람의 생애를 전부 다 알 수 있고, 내가 평생을 들여도 알 수 없을 만한 지식과 생각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 폴 오스터가 쓴 책을 전부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처럼 재능있고 유려한 작가가 세상을 떠나 더 이상 그 생애의 몸부림을 읽을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