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재밌는 작품을 만났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작품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다. 요즘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 쪽은 많이 치고 올라왔는데, 넷플릭스가 이번 작품을 통해 아직 저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 같다.
넷플릭스 신작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으로 인해 평화롭던 일상이 무너지고 부딪치는 이야기다. 드라마의 미술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초반 흡입력이 대단해서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내 기대보다 뒷심이 살짝 부족해서 아쉬웠다.
- 스포 주의 (스토리, 해석) -
드라마에는 주요 인물로 전영하(김윤석), 구상준(윤계상), 유성아(고민시), 윤보민(이정은) 네 인물이 나온다. 전영하와 구상준은 각각 현재와 과거에 펜션, 모텔을 운영하는 주인으로 뜻하지 않은 불청객(살인범)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는 사람이다. 윤보민은 술래라는 별명을 가진 강력반 형사로 과거 구상준의 사건과 현재 전영하의 사건을 이어주는 매개체 같은 역할이자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유성아. 과거 구상준이 맞닥뜨린 연쇄살인범 지향철이라면 현재 전영하가 맞닥뜨린 살인범은 유성아다.
이 드라마에서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대사가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소리가 났겠는가?라는 대사다. 대사에서 중요한 건 아무도 없는 숲속이라는 것 그리고 소리다. 이는 사르트르의 실존이나 인식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드라마에서 의미하는 바는 인지(소리)하던 안 하던 혹은 외면하던 사건(나무)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과거 구상준은 지향철이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건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 구상준과 가족들은 불행을 겪는다. 전영하는 다르다. 전영하는 어렴풋이 유성아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러나 펜션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혹은 "에이 설마"하는 마음에 눈앞에 버젓이 살인의 증거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오히려 숨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영하가 인지했던 안 했던 사건은 발생했다. 때문에 영하는 유성아가 혹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펜션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계속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유성아가 펜션에 머물기 위해 다시 오면서 영하 또한 구상준처럼 돌을 맞는다.
유성아가 펜션에 다시 방문했을 때 영하는 유성아를 마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 행동이 오히려 성아가 펜션과 영하를 주목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처음 이 부근을 봤을 때 유성아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같은 느낌으로 생각했다. 마치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나 사건처럼 유성아가 전영하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운명처럼. 예상하지 못한 불운의 사고처럼 유성아는 사람들에게 예기지 못한 불행을 주는가 싶었는데 유성아의 살인은 그저 첫 번째 살인을 지우기 위한 살인일 뿐 사이코패스 지향철이나 안톤 쉬거와는 전혀 다르다.
내가 유성아를 사이코패스나 안톤 쉬거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던 건 유성아가 펜션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유성아는 전영하의 펜션을 마치 자기 것처럼 온갖 식물로 채워 넣고 건물 외벽에는 마치 건물 아래서 부터 식물이 자라난 것 같은 그린다. 심지어 펜션에서 유성아가 그리는 그림들은 얼굴에 나무가 뿌리 내린 그린 그림, 뿌리가 가득한 커다란 나무 위에 산이 있는 그림 등이다. 이 모든 것을 뿌리가 없는 유성아가 자기 정체성(뿌리)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봤다.
때문에 유성아가 처음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계기(전남편이 자기를 사랑해서 결혼했는지, 아들 엄마가 필요해서 결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한 자신의 정체성 혹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행동일 뿐 그게 어떻다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유성아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정체성의 혼동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처럼 보였다.
후반에 밝혀지듯 유성아의 두 번째 살인과 여러 차례의 살인 시도들은 자신의 첫 번째 살인을 숨기기 위한 행위였다. 지향철과 유성아 모두 개구리에게 돌은 던졌지만 둘의 의도나 상태는 명백히 다르다보니 지향철과 구상준 그리고 유성아와 전영하로 대치되는 구조는 조악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초반의 강렬한 느낌이 아쉬울 정도로 후반부로 갈수록 유성아는 그저 철없고 자기밖에 모르며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로만 보였다.
유성아가 영하에게 집착한 것 또한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에게 주목해 온 숱한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모른 채 해서 흥미로웠을 수 있고, 여기서 또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펜션에 집착한 것 역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자기의 본질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또한 후반부 경찰이 발견한 시신으로 볼 때 그저 자신의 첫 번째 살인을 잘 숨기기 위한 집착으로 일단락 난다.
윤보민의 역할도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아쉬웠다. 사명감을 가진 경찰보다는 마치 악마를 잡는 행위가 좋아 경찰이 된 인물 처럼 그리려 한 것 같은데, 구상준과 전영하의 사건을 이어주고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만 할 뿐 초반의 강렬한 느낌은 후반부로 갈 수록 힘이 없었다.
전영하와 구상준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사건을 겪는 인물로 드라마는 둘의 대비를 통해 선택의 차이(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에 따른 결과를 보여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둘의 선택은 의미가 없다. 어쨌거나 나무는 쓰러졌으니까. 구상준은 사건 이후 아내도 잃고 자신의 삶도 잃어버린 채 영원히 그 시간 안에 갇혀 살게 된다. 당연히 그와 그의 아들이 어떻게 살았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상준은 영원히 그 시간 안에 갇혀 치매에 걸리고, 상준의 아들은 그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지향철을 죽이려 계획하고 성공한다.
영하와 상준이 연결되는 건 윤보민이 간직하고 있는 상준의 모텔 사진 때문이다. 영하는 상준의 모텔 사진을 보고 과거 자신과 비슷한 사건을 알고 그에게 주목하게 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상준을 찾아가지만 그의 상태와 아들을 보고 사건을 외면하기보단 직접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결론적으로 영하는 평화를 되찾는다. 상준은 여전히 그 시간 안에 갇혀있지만 그의 아들 기호는 새로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는다. 윤보민 또한 그토록 마음에 담아두던 첫 번째 사건을 해소하고 다시 강력반으로 돌아간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신선했고 초반 극을 끌고 나가는 흐름이나 미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좋았다. 그리고 본질에 주목하지 않고 자꾸만 본질에서 벗어난 것에 주목하려는 인물들이 마치 숱한 역사와 사건이 반복됐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굴레 같아서 재밌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이 점차 떨어지고 특색 있던 점들도 점점 평범해지면서 살짝 실망스러웠다.
마지막 순간 영하가 뒤돌아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혹시나 싶어 "어?" 하고 봤는데 구상준의 아들 전화인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드라마의 미장센과 배우들의 연기력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감독이 이보다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쉬운 선택을 한 것 같아서 아쉽다. 모완일 감독을 좀 더 괴롭히고 고뇌하게 했으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소리가 났겠는가? 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