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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해석

#10.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자키스 서평(후기) 및 해석

by 까망북클럽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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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가 세상의 빛을 본 지 70여 년, 1975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지 40여 년 만에 최초로 중역이 아닌 그리스어 원전 번역으로 만나본다. 그리스학에 정통한 전문가로, 그리스 아테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학과 명예교수이자 한국-그리스 협회 회장인 번역자 유재원이 오랫동안 카잔자키스의 전 작품을 연구하고, 실제로 카잔자키스와 조르바의 행적을 짚어 작품 속 공간까지 살펴오며 평생 동안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숨결과 문화까지 담아 번역했다. ‘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책벌레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노동자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크레타의 갈탄광으로 가는 길에 조르바를 만난다. 그는 겁에 질린 불쌍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편히 살고자 세워놓은 윤리, 종교, 조국과 같은 장애물을 단번에 깨뜨려 무너뜨릴 웃음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나는 그가 불가리아 반군에 대해서, 갈탄에 대해서, 여자들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조국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격정에 사로잡혀 더 이상 말만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그는 벌떡 일어나 바닷가의 굵은 자갈밭 위에서 춤을 추곤 했다. 그는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우리 삶을 받아들이고 즐기며, 동시에 묵묵히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사자처럼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심지어 어린아이처럼 매 순간 경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조국, 관습,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주저 없이 행동하며, 하느님과 악마에게도 당당히 맞서는 조르바.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라고 소리치는 내 영혼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조르바 앞에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저자
니코스 카잔자키스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18.05.25

 

 

 독서를 해야 할 때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문학작품이 쓰인 시대의 관념과 문화를 감안하여 현대와 맞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봐야 한다는 거다. 조르바를 처음 읽었을 때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현대의 관념과는 너무나 다른 부분이 많고 그런 부분의 대사나 묘사가 거북할 수 있다. 지금은 존경을 받는 많은 과거의 인물들도 살아생전 현재와는 맞지 않는 관념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많다. 현재의 관념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소급하여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책도 같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소설보다는 철학 책에 가깝다.

줄거리는 매우 매우 간단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내가 조르바라는 사람을 만나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망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토록 간단한 줄거리에서 조르바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걸 보니 고전이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책의 주인공은 조르바지만 시점은 내가 조르바를 관찰하는 2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는데 주인공 나와의 대비를 통해 각자가 삶을 어떻게 살고 사유하며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조르바의 말을 빌리자면 주인공인 나는 말뚝에 묶어놓은 줄이 매우 긴 사람이다. 조르바는 묶어놓은 줄이 없는 사람이다.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누가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각자의 생각일 뿐이니.

 

책은 말뚝에 묶인 나와 자유로운 조르바의 대비를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욕망"에 대해


 

 

 

 


 우리 삶은 자의든 타의든 욕망을 억압 당하기도 하고 절제하기도 한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혹은 무엇 때문에 욕망을 절제하고 있다. 법, 규율, 규칙, 도덕, 이성, 명예, 상식, 윤리 등 우리는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 억압당하기도 하고 희생하기도 한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물었을 때 사람은 사람 때문에 산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산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욕망 때문에 살아간다. 욕망하는 것이 나쁠까? 아니면 자연스럽고 좋은 건인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욕망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욕망하더라도 그 욕망을 행할 때 우리는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을 생각해야 한다. 


 조르바는 욕망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다.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사랑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할 때도 무언가 한 가지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는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들은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도 정당성이 없으면 하지 않고 머뭇머뭇 거리는 경우가 많다.  (조르바를 읽다 보니 문득문득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라는 소설이 생각나는데 조르바를 읽고 공중그네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책을 반으로 퉁 잘라 놓고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조르바와 함께하는 나. 조르바와 함께 하지 않을 때 나 혹은 나의 내면. 조르바와 함께 하지 않을 때 책 속의 나는 여러 이유로 고민하고 망설이고 우려스러워한다. 마치 평소 우리처럼.

그와 반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자신과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와 함께하는 순간이면 '나' 도 자유로워진다. '나'는 조르바에 비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오히려 일자무식이고 배움의 깊이도 없어 보이는 조르바에게서 철학을 배워간다.

그런 이 책을 읽는 나 조차도 조르바에게 철학을 배운다. 만약 내가 철학을 책으로 배웠다면 너무나 어려워 중도에 포기했을 수 있지만 길에서 철학을 배운 조르바의 철학 이야기는 너무 쉽고 재밌으며 피부에 확 와닿는다.

 

 

 

 

 

 

 


 

 내가 만약 조르바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나는 거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만약 조르바 같은 사람을 직접 대면하면 겁에 질려 피할 것 같다. 조르바같이 거친 사람은 멀리서 보는 게 좋다. 조르바를 좋아하게 될 것 같으면서도 그의 거친 입담과 상스러운 생각 때문에 조금 꺼려진다. 아니 이조차도 내가 욕망에 그리고 나 자신에 충실하지 못해서일까?

 

 

 

 

 


 

 욕망은 나쁜 걸까? 욕망이 좋고 나쁨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로켓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로켓은 어떠한 물건을 훔치는데 다른 캐릭터인 스타로드가 왜 물건을 훔쳤냐고 묻는다. "훔치고 싶으니까." 

욕망하면 행해야 할까? 욕망은 조금 절제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 중간?

 

욕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조르바의 말처럼 일단 먼저 먹으면서 생각하고 먹으면서 말하자.

니코스 카잔자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



나누어 보고 싶은 것.
1. 과거의 관념과 현재의 관념이 달라 읽기 어려웠던 소설
2. 잘 쓴 대사란 무엇일까?
3. 욕망
4. 자유
5.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선(線)이라는 것은?
6. 해서는 안되지만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당신의 욕망은?
7.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그리스인 조르바
8. 번역에 대해 (의역이 좋은 것인가.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9. 마지막으로 춤을 춘 경험은?
10. 조르바와 대화를 나눈다면 나누고 싶은 대화는?
11. 내가 생각하는 내가 묶여있는 줄의 길이는?

 

2018 - 작성

2022.08.11 - 1차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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